
손효능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평균 3.1
<1> 그의 이상은 더 바람직한 세상이 아닌 올곧고 눈부셔 보이는 그녀 자체였다. 하지만 그는 우정을 넘어선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주체할 수 없는 질투심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렇게 자기만의 이상론에 도취한 나머지 주위에 벽을 쌓았다. 서서히 그 안에 갇히리라는 것도 모른 채. . . <2> 고등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사회인의 때가 묻지 않은 그 시절이야말로 유일하게 '나'와 '세상'에 온전히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까진 세상에 등 떠밀려 공부며 진로에 온 신경이 쏠렸고, 그 고비를 넘긴 끝에 청춘이라는 자유에 이르고나서야 처음으로 나와 사회와 세상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 시대를 막론하고 20대들이 사회 부조리에 가장 크게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우리에겐 어느덧 익숙해진 희망적이지 않은 사회에 짙은 이질감을 느껴서 아닐까? 무언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강한 확신, 그리고 아직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상식적 세계 전체와 맞서게 만드는 용기를 주는 것 아닐까? . . <3> 그래서 더더욱, 나의 이익에 관계없이 바른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이 하나 둘 안정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이리저리 헤맨 끝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변해버린다는 게 못내 씁쓸하다.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외치던 수많은 청춘들이, 깨달았을 땐 본인의 존재의의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 청춘들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며 여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음이 닿는데로 움직이는 모든 순간이 눈부시게 빛나야 할 청춘의 필름이, '젊음을 낭비해선 안 된다'며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유감스러운 현실 앞에서, 우리 어른들은 무슨 말로 위로해줘야 할까? . . <4> 아키요시는 ‘이 세상을 우리가 태어나기 전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너무 어리고 아려서 차마 마주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이상을 추구했다. 주위는 이런 그녀를 부끄러워하며 ‘관종’이라 손가락질 했다. . 지나친 소신과 이상론은 꽉 막히고 현실성 없는 사람처럼 비치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아니고서야 과연 누가 세상을 움직이는 계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 현실적인 사람은 사회에 녹아들고 적응하는 데 탁월할지 몰라도, 과연 비현실적인 이상을 현실로 끌어들일 수 있을 만한 상상력과 신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 . <5> 대학교 1-2학년에 단체 대표를 맡은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동아리나 학회를 한 적 없는 입장에서, 화자가 취업스펙쌓기 모임으로 변질된 모아이 회원들을 바라보며 ‘졸업 선배 또는 사회인들에게 실실 웃어가며 알랑알랑 굽실거리고 있다’는 표현에 공감이 가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 재학 시절, 달리 흥미 있는 학회도 없어 책이나 읽으며 유유자적하게 보냈던 나와 달리 많은 학우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뿐만 아니라 선배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기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뭐랄까…그런 걸 보며 실력이 아닌 인맥으로 기회를 만들었다며 아니꼽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 그런데 돌이켜보면 결국 나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시기어린 질투이지 않았나 싶다. 예나 지금이나 윗사람들을 좀처럼 따르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떡 하나 더 얻을 먹을 기회도 스스로 저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관계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못내 부러웠던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에 옳고 그름이 있겠냐마는,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맞지 않고 겪아보지 않은 다른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 . <6> "왜 이런 사람이 됐어?"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일수록, 무엇보다 추억이 많고 끈끈한 관계일수록 친구가 변해버렸을 때의 실망감을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나쁜 걸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울타리를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삶과 경험을 할 테고, 자연스레 일상과 가치관의 차이는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변화와 친구 사이에 간극에 대해, 존중 없이 과거에 사로잡혀 그 시절 그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과거의 자기 일상을 그리워한다는 방증 아닐까? . . <7> 처음엔 여주인공인 아키요시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옅은 점, 주인공의 보잘 것 없는 노력에 쓸데없이 많은 지면을 사용한 점에 대해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내 그럴만한 이유가 설명되고, 보잘 것 없는 노력 역시 책의 주제를 돋보이기 위한 장치라는 걸 이해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후회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책의 주제인 어리고 아리고 여린 청춘을 비추기 위해, 책의 완성도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이를테면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주변 인물들이 그저 전개를 위한 도구로 소비됐고, 아린 경험을 한 주인공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 정말 성장하긴 한 건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어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후로 발전은 커녕 퇴보만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