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진
3.5

악몽과 몽상
책 ・ 2019
평균 3.6
2023년 04월 02일에 봄
불안함과 재미의 상관관계에 관한 교과서 글의 소재나 구성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과감함과 절묘한 긴장감 조성이 탁월한 단편집이었다. 스티븐 킹의 '악몽과 몽상' 단편집이라고 하니 피가 낭자하거나 터무니 없는 심령 현상으로 가득한 책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시의적(글쓴 시점 기준)이거나 자전적인 내용도 꽤 많았다. 단편에 대한 각각의 소감은 뒤에 남기겠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영화적'이라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드는 이야기였다. 지금 소설의 화자에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시각화가 아주 훌륭하다. 지문효율적인 묘사를 통해 고작 3, 4페이지로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이 어떠한지, 그/그녀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갈등요소는 무엇인지 간단하지만 부족하지 않게 설명한다. 그 후에는 '왜'에 대한 설명보다는 앞으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묘사에 집중하게 되고 이를 속도감 있게 풀어나가기에 이야기가 가지는 중요성, 현실성 대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첫장을 펼친 날 기준으로 완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순수하게 책을 읽은 시간으로만 치면 5일 정도 걸린 듯하다. 1, 2권 합쳐 약 1,200 페이지의 어마무시한 분량이고 약 20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장르도 주인공도 다른 분절된 이야기임에도 엄청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름지기 대중 작가라하면 길을 걷다가 마주친 개가 짖는 듯한 그런 뻔한 이야기를 써도 독자가 재미에 흠뻑 젖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면에서의 최고봉은 역시 스티븐 킹이 아닐까 한다. 아래에도 적겠지만 '움직이는 틀니' 같은 글을 읽어보면 만약 틀니가 사람을 죽인다면... 이라는, 초등학생이 쓴다고 해도 코웃음칠만한 유치한 소재로 시작하지만 불안과 긴장을 조성하는 방식, 속도감있는 글에 딱 맞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케릭터 빌딩과 약간의 유머를 더해 어떤 글을 써야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지' 를 스티븐 킹은 장말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런의 캐딜락' / '움직이는 틀니' / '움직이는 손가락' / '죄송합니다, 맞는 번호입니다' / '장마' / '크라우치엔드' / '다섯 번째 4분의 1' 상기 작품은 '만약 A가 B라면...' 류의 이야기 인데 어떤면에서는 아주 허무맹랑하지만 스티븐킹의 기교와 돌파력에멱살을 잡혀 끝까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돌런의 캐딜락', '움직이는 틀니' 은 굉장히 감탄하면서 봤는데 몰입감은 소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묘사에서 온다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나이트 플라이어' / '운동화' / '10시의 사람들' / '클라이드 엄니의 마지막 사건' 이 작품은 강력한 메타포를 품고 있거나 예측불가한 내러티브로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해주는 단편들이다. 아마 작품의 도입부를 읽고 마무리를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은 독특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였다. 특히 '클라이드...' 는 '악몽과 몽상'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은데, 왜냐하면 창조자가 자신이 창조물에 관여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대다수가 SF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클라이드...'는 정말 과감한 시도이고 그 상상력을 납득시키는 묘사와 그저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훌륭하게 마무리되기 떄문이다. 이 단편집의 단점이라면 뭐랄까, 책을 다 읽고 나면 스티븐 킹의 정수를 압축해서 꾸깃꾸깃 목구멍까지 밀어넣어진 느낌이 드는데, 간단히 말하면 좀 물리는 느낌이 없진 않다. 당분간은 그의 책을 읽진 못하리라. 하지만 스티븐 킹만의 긴장감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 보양식인데 중독성이 있다니, 거부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