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정환

정환

7 years ago

5.0


content

매그놀리아

영화 ・ 1999

평균 4.0

아픔을 우연이라 믿고픈 필연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사랑을 소망하고 구원을 갈구하고 있으므로 나의 아픔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저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 작은 용기와 용서가 곧 사랑이자 구원이다. . . “왜 거짓말을 하죠?” 기자가 프랭키에게 결론적으로 물었던 질문이다. 사실상 이 질문은 프랭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된 질문이었고,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을 더 잘 보이기 위해서라며 클라우디아가 짐에게 말해준 듯했다. 결국 목적은 나를 감추려 드는 것이고, 거짓말은 그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며 감추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모든 걸 털어놓지 않은 채 감추려 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감추려 하는 그것들은 나의 과거이자 나의 상처이고 나의 잘못이며 나의 후회다. 그리고 그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소통은 단절되었다.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여기 나온 이들은 모두 올바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짐은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 하던 아주머니와 대화를 할 수가 없었고, 힌트를 랩으로 알려주겠다던 아주머니의 아들과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프랭키는 기자 그웬의 질문에 입을 꾹 다물었으며, 린다는 지난날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천재 소년 스탠리는 생방송 무대에서 급한 화장실조차 가지 못했고, 아버지는 대기실의 모니터를 보면서 들리지도 않을 아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도니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워 교정기에 집착했다. 퀴즈쇼 진행자 지미가 아내와는 물론 딸 클라우디아와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서로 지워지지 않을 과거를 감추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릴 잊지 않았다”라는 말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지닌 우리는 모든 걸 잊으려 발버둥 쳐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누구나 살아오면서 상처를 받아왔고 그 상처를 감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감추기만 한다면 여전히, 불현듯,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또한 상처를 준 사람 역시 그 언젠가는 자신의 과오를 고백할 때가, 그리고 그에 따른 대가가 반드시 돌아올 테다. 그렇게 잘못은 돌아와 후회가 되고, 상처는 남겨져 흉터가 된다. 그러니 과거를 감추려는 사람에게 이를 들추는 사람이 있다면 공격적으로 느끼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공격적으로 느끼는 까닭은 어찌 보면 자꾸만 들추려 하는 남을 탓하는 게 아니라, 감춰도 지워지지 않는 과거가 텅 빈 머릿속을 서서히 채우기 시작할 때의 고통으로부터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들춰내고 싶지 않기에 그들이 선택한 소통의 단절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상처와 잘못은 다시 돌아올 테고, 과거는 우릴 잊지 않을 테니 스스로가 이를 가두고 잊는다고 해서 치유되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오히려 상처뿐인 과거 속에 자신을 영원히 가두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스스로 과거에 집착하고 연연하는 꼴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그렇다면 더 이상 치유나 발전은 없게 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에게도 마음을 닫아버린 이들은 타인의 구원을 바라고 있다. 줄 사랑은 많은데 누구에게 줘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주고 싶어서 가 아닌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말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아픔과 사랑을 혼동하는 것도 우린 모두 상처받은 존재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스스로가 먼저 변하는 것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힘들고, 과거에 벗어나지 못할 때 바보같이 자신을 숨기려 들며 어떻게든 잊어보려 하기보다는, 그저 견디기 힘든 것들은 멈추지 않을 것을 깨닫곤 포기하며 그동안 가뒀었던 나를 놓아주는 것 밖에 없다. 그것이 이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는 상처받은 인물들이 우연이 아닌 필연의 끈으로 연결해주었고, 이들 모두 하나의 노래를 부르며 이를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삶의 현명함을 일깨웠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을 타고 살아가는 우리가 후회하지 않을 옳은 일을 한다는 게, 가끔 도움을 받아야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 우리가 무언가를 용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삶 속에 결정을 해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도 잘 안다. 정직하고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큰 용기를 바라는 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사랑 받기를 원하고 구원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스스로 선택해야 하며, 홀로 딛고 일어나야만 한다. 구원의 기회는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행여 일을 망치진 않을까, 나를 안 좋게 보지 않을까 걱정할 것 없다. 우리 모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니까. 숨겨둔 나의 과거와 아픔, 상처 모두 털어버릴 구원의 기회를 잡게 되는 순간, 예전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젠 그러지 말자. 숨기지 말고, 겁내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놓자. 아픔을 우연이라 믿고픈 필연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사랑을 소망하고 구원을 갈구하고 있으므로 나의 아픔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저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 작은 용기와 용서가 곧 사랑이자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