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평균 3.4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서 비롯된, 삶을 향한 일관적인 수동성이 이 시대의 (일본의) 청춘일까.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배회하지만 그들의 젊음은 그러나 마치 제자리를 돌듯이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한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생생한 감정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룰때 그들의 청춘 역시 활기를 띄지만, 청춘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저 밤 뿐이라는 듯 유희의 살아있는 시간은 이내 새벽을 맞아 덧없이 사그라진다. 거기에 서사 속에 격정마저도 부재하다. 삼각 관계 속에 그 흔한 질투의 플롯조차 없이 세 사람의 사랑을 일상적으로 잡을 뿐이다. . 그런데 이렇게 영화가 지리멸렬한 현실 속 청춘의 사랑의 침잠을 담담하게 잡기만 하는데 놀랍게도 감정의 충만함이 느껴진다. '나'(에모토 타스쿠)와 사치코(이시바시 시즈카)의 베드씬은 수줍지만 또한 설레는 감정이 한껏 담겨있고, 이후 시즈오(소메타니 쇼타)가 끼어든 후 가는 편의점 장면에서의 카메라는 마치 그 순간이야말로 생기를 찾았다는듯 활기차게 그들의 주위를 미끄러지듯 맴돈다. 또한 그렇게 돌아간 이 셋의 보금자리처럼 느껴지는 '나'와 시즈오의 집에서의 즐거운 시간이 흐르는 밤의 장면은 가라앉은 청춘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물론 이 활기찬 생동감은 오직 밤이라는 청춘의 시간만 생겨날 뿐 끝내 새벽은 오고 언제 그랬냐는듯 그들의 일상은 다시 침잠한다. 이 사실적이며 영화적인 대조 - 낮의 시간은 고정된 카메라로, 밤의 시간은 유영하듯 움직이는 카메라로. - 가 영화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날때 영화 속 청춘은 말 그대로의 그 누구도 아닌 보편적인 한 젊음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라스트 시퀀스 이전에 드러내는, 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새벽을 보여줄 때 보다 확실하게 강조된다. . 그리고 라스트 시퀀스의 라스트 숏.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2018)와 이시이 유야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의 마지막 응시와 유사하지만 또한 대조되는 느낌의 모호한 응시. 무기력하게 일관적인 수동성에서 기어코 벗어난 청춘의 부름에 어떻게 답을 해야 될 지 난처한 세계의 모호함. 거기서 끝나는 영화는 세계에 부딪히는 젊음의, 청춘을 향한 낙관을, 아니면 비관을 바라본 것일까. 또 아니면 청춘의 본질은 그 무엇도 정의내릴 수 없는 혼돈의 에너지 그 자체인 것일까. 그 생생한 청춘의 사랑 끝에 대응하는, 세상의 모호함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는 쉬이 덜어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