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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0nw00

ge0nw00

6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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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책 ・ 1989

평균 4.1

유일무이하게 정당한 죽음은 존재에 선재함과 동시에 빈틈없이 존재를 추행함으로써 생에 근원적인 울을 둘러친다. 고로 태생적으로 무오할 수 없는 인간은 그 너머를, 즉 완전무결한 진실과 자유, 그리고 구원으로서의 죽음을 동경하거나, 그 막대한 죽음의 구속 아래 굴종할 수밖에 없다. 명철한 정신으로는 결함 있는 자신을 사랑할 도리 없는 인간에게 죽음의 대용품으로서 주어진 방탕은, 관대하게도 미래/과거와 함께 생의 의무를 지우고 '지금 여기'의 쾌락 주체로서의 '나'만을 남긴다. 그런 '나'는 자기 외의 존재들에게 선택적으로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군림을 허락받는다. 허나 방탕으로 말미암은 사랑과 희망과 정신과 고통의 불완전연소는 결국 절대적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한 죽음에 의해 압도당함으로써 무력해진다. 그렇다면 인간은, 산다는 것이 죽어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떨칠 수 없이 부상하는 모종의 원죄의식을 자각하며 기정된 한계에 굽히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서둘러도 제때 없이 늦을 뿐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우리는 협량한 자기변호에서 겸허한 자기심판으로 도약해야 한다. 무감하고 불통한 인류 앞에 고해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추락하는 가히 영웅적인 책임의식. 고독할 뿐인 죽음과 일견 편리한 방탕에로의 유혹을 뿌리치고 삶에 수반되는 온갖 간난신고를 감내하는 집단적 굴종으로의 연대의식. 가장 인간적이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초인적일 수 있는 전락. 그 연후에야 가능한 진정한 타인에의 공감과 경계. 그리고 다시, 그 판단의 재귀적 선순환. 죽음이 아닌 생을 향한 인류의 자기파괴라는 가장 인간적인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