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Dolce

Dolce

3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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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쓴 사나이

영화 ・ 1956

평균 3.7

<오인> 혹은 <누명 쓴 사나이>. 헨리 폰다와 베라 마일즈가 출연했다. 이것은 공포 영화다. 히치콕의 필모그래피에서 공포/스릴러 장르를 위시한 <새>나 <싸이코>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영화다. '누명'이나 '의심,' '의혹' 같은 단어는 히치콕의 작품 세계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것이지만 <오인>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모티프에 있지 않다.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말하자면 이 작품은 상황이 주는 일시적 변화보다는 영구적 변화에 집중한다. 누명 쓴 사나이가 누명 '속에서' 겪은 답답함과 고난보다는, 누명을 벗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해 집중한다. 구치소에서의 인상적인 쇼트, 눈을 감은 주인공 '매니'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빙빙 돈다. 매니가 감옥에 들어가는 장면의 연출은 기묘하다. 주인공에 시선에 맞추어 편집증적으로 비춰지는 수갑, 옆사람들의 발 ᆢ 그리고 매니의 무기력한 무표정의 얼굴. 그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무기력함에서 나는 어딘가 꺼림칙해지는 공포감을 느꼈다. 차라리 그가 분노하거나, 슬퍼했다면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텐데,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개인을 압도하는 사회의 부조리. 그런 모든 요소를 함축하는 그의 표정에서 '불안'이라는 말로는 채 형용하지 못할 심리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사건을 접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던 아내 '로즈'는 남편의 누명을 벗겨줄 알리바이 두 명이 사망했다는 기묘한 우연을 접하면서 상황이 악화된다.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인가? 아, 그간 빚문제가 문제를 일으킬 줄 알았지, 아니 어쩌면 남편은 범죄를 저질렀나?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인가? ᆢ 버나드 허먼의 섬뜩한 앰비언트가 흐르는 사이, 아내의 무표정은 매니의 무표정보다도 메마른 공포를 준다. 매니의 이마를 빗으로 가격하는 장면은 가장 섬뜩하다. 깨지는 거울, 이 사건 전과 후의 세계가 단절된다. 안온한 일상이란 이리도 깨지기 쉬운 것인가? 어릴 적 아버지가 본인을 잠시 감옥에 가두었던 게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다던 히치콕 개인의 경험이 이 영화를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어떤 사건들은 다 해결되었을지언정 마음 속에 영영 남는다. '2년 후 다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말하는 엔딩 크레딧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그들 마음 한 켠에는 큰 트라우마로 남을 것임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누명을 벗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해 집중하는 영화답게 진짜 범인이 등장해 누명이 벗겨지는 지점에도 카타르시스가 배제되어있다(매니의 기도하는 얼굴과 범인의 얼굴이 겹쳐지는 쇼트는 대단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의 단단하고 결백한 신념만이 기댈 수 있는 기둥일지도ᆢ). 사건은 너무도 덤덤히 종결되고, 정말 진심으로 피해자편에서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변호사도 언젠가는 돈 얘기를 하지 않을까. / '누명'을 가지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처럼 만들 수도 있지만 <오인>처럼 만들 수도 있는 히치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