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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엠

연엠

5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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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책 ・ 2019

평균 3.6

"아냐, 우주보다 지구가 더 커!" 짧은 인생이나마 서러운 기억보다 부끄러운 기억이 더 강렬한 요즘, 떠올릴 수 있는 최초의 부끄러운 기억은 4살인가 5살 때의 것이다. 유치원 다닐 때는 아니었던 것 같으니 그때 쯤이었지 싶다. 14층에 놀러갔다. 14층에 살고 있던 형, 누나와 작은 방에서 우주가 배경인 컴퓨터 게임을 했다. 어쩌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난 "세상에서 지구가 제일 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때까지 내 배경지식에는 우주라는 게 없었다. 어른들이 사는 곳도 지구, 호랑이가 사는 곳도 지구, 이름이 헷갈리던 머나먼 유럽과 뉴욕이 있는 곳도 지구, 먼 옛날 거대한 공룡들이 살았던 곳도 지구, 그러니까 지구는 세상에서 제일 큰 것. 그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형은 대번에 반박했다. "아냐, 우주가 제일 커." 나는 속으로, 아니, 뭐라고? 우주가 뭔데? 세상에서 제일 큰 건 지구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 "지구가 제일 커!" 형은 다시 "지구보다 우주가 더 커! 우주 안에 지구가 있는 거야!"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건, 형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구보다 우주가 큰 게 맞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그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우주보다 지구가 더 크다고 말했으니, 그게 사실이어야 했다. 지구가 더 크다고 빠득빠득 우겼다. 그렇게 우기던 기억이 왠진 모르겠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미운 4살의 똥고집이었겠거니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가르침으로 다시 해석해보면 그건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민망하고 무안해지기 싫고, 그러니 여하튼 간에 내 말이 맞아야만 한다는 미숙한 생떼. 인생의 비극은 지금의 나 뿐만 아니라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4살인가 5살이었던 나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나는 친구들에게 "사람은 고등학생 때 만들어진 세계관과 태도를 그대로 가진 채 거처만 옮기며 살다가 죽는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보다는 지금 남아있는 첫 번째 기억, 그 기억이 만들어졌던 때의 성격을 그대로 갖고 성장하며 살다가 죽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좀 비약이지만 안전한 술자리에서만 하는 얘기니 그러려니 해주시길. 그리고 인생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그런 점을 알고 대응할 수 있게 책까지 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 내가 살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네 말이 맞다"였다. 4살 때도 고등학생 때도 지금도. 내가 틀린 말을 하든 맞는 말을 하든 일단 내 말이 맞다고 해주면서, 내가 이상하고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고 안심시키는 것. 그건 다분히도 내가 이상하고 모자란 사람이기 때문이지만, 다분히도 이상하고 모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갈구하는 거니 그래그래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주가 뭔지도 몰랐지만 몇 마디 말을 듣고 지구보다 우주가 큰 걸 이해할 만큼의 분별력은 있으니 내가 틀렸다면 결국은 그걸 인정할 것이고. 지금은 "당신이 맞다"고 말하는 게 대체로 내쪽이다. 상대방이 안심감을 느끼는 게 좋아서 그러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영 엿같은 소리를 할 때도 그렇다(어쩔 수 없을 때긴 하지만). 엿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사회성과 처세술이란 이토록 엿같은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깔보며 살았지만 그런 태도조차 자기계발서를 깔보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랬던 것 같다. 주변에서 하도 이 책을 극찬하기에 대체 뭔 내용이 있길래 그러나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잘했다 싶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를 우선 다독일 수 있는 사회가 있다면 제법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