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하나

하나

3 years ago

4.0


content

거울 속 외딴 성

영화 ・ 2022

평균 3.6

2023년 04월 12일에 봄

감독의 전작 <컬러풀>을 볼 때도 느꼈었는데, 이 감독은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한다. 시궁창 같은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어른으로 자라날 것인가 그냥 하루하루 버티며 시간이 지나면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인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회차 감상 이후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에 관한 내용은 후술 이하 스포 포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청소년기에 고통받던 아이가 커서 아동심리상담사가 된다는 서사는 아주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답기만 할 뿐,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집에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의붓아버지, 학교에는 자신을 왕따시키는 학우들이 그대로 존재한다.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 살아갈 모멘텀은 없다. 어떠한 계기를 통해 지옥을 극복하는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아가페적인 사랑을 나누어주는지 즉, 어떠한 계기를 통해 어른이 되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추한 세상을 아름다운 영화로 바꿔서 표현할 수는 있다. 또한 영화 행간의 모든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다면 최소한 관객을 납득시킬 필요가 있지 않나? 감독은 전작과 같은 '살아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도 그러한 신념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는 바이나, 가벼운 메시지가 아니라 무겁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서사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보다 문제 해결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한 성찰이 동반되지 않은 메시지는 공허할 뿐이다. 문제 해결책은 oo이다! 라고 제시해달라는 뜻은 아니다.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지, 해결이 가능한 것인지 성찰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컬러풀>에서 주인공이 자살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인 엄마의 불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작중 아키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마치 그런 고통이 있어도 살아서 버티다보면 행복해져~ 라는 나이브한 교훈을 주려는 것 같다. 고통의 당사자는 당장 버틸 수가 없어 죽고 싶은데도 말이다. 인간은 저마다 힘든 시기를 자신의 힘으로 견뎌내며 어른이 되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감독이 불가항력적인 문제 앞에 선 인간의 무기력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면, 문제 해결에 대한 성찰은 꼭 필요하다.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느꼈기 때문에, 그 감동의 크기만큼 아쉬운 마음이 더욱 커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회차 감상 이후의 단상 주인공이 나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니 작중 상황에 보다 너그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세세한 설정이 어떻든 개연성이 어떻든 관계없이 영화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감상때는 그 형식의 투박함이 심히 거슬렸다. 메시지만 덩그러니 주어져 있을 뿐 그 설득력이 떨어져 공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투박함을 감안하고 다시 감상하니 투박함 속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두 번째 감상에서야 제대로 느껴지는 온기였다. 감독 할아버지는 이미 늙어 아이들의 생리에 대해 잘 모른다.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 그렇게 아이들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지만,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누구보다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낭만주의자이고 싶은 나는, 그 애틋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영화는 타인과의 관계도,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이라는 점을 설파한다. 자기자신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며 이기주의자가 된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만, 적어도 자신이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학교생활?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타인의 평판 따위 하나도 중요치 않다. 선생 역을 맡은 미야자키 아오이는 이 영화관련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학교생활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다. 학교생활은 아이들이 이용할 수단일 뿐, 결코 소중한 청소년기의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영화는 기억을 남긴 한명의 전학생의 존재를 통해 주인공의 꿈이 이루어지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아무리 봐도 얼렁뚱땅인 이 엔딩은 왠지 모를 흐뭇함을 선사해준다. 물론 현실에서 고통받는 청소년들이 작품 끝부분의 두 사람처럼 힘찬 발걸음을 내딛으며 살아가기란 힘들다. 하지만 그 발걸음이 그들에게 일말의 위로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아픈 시기를 견뎌내며 어른이 된 모든 청소년에게 위로를, 위로를 넘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잘 견뎌냈구나, 훌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