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오세일

오세일

4 months ago

4.0


content

마젤란

영화 ・ 2025

<마젤란>은 우리가 줄곧 봐왔던 전형적인 라브 디아즈의 세계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작품이다, 혹은 그런 작품처럼 보인다. 필리핀이란 자국의 특수성에서 잠시 벗어난 공간(포르투갈)부터 일단 이질적이지만, 결국 포르투갈의 항해사 마젤란의 욕망적 모험은 다시 그의 카메라 거쳐 필리핀으로 회귀한다. 서로의 존재를 (거의) 알지도 못하던 16세기 포르투갈과 필리핀이라는 분리된 대륙은, '식민'이란 서구의 열망으로 불완전하게 잇대어진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재현되는ㅡ대략 500년 전에 벌어졌던ㅡ이 인류적 비극은, 마치 21세기 현대에서 필리핀이 마주하고 있는 독재의 위기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마젤란의 욕망은 보다 더 원초적인 모험을 경유한다. 새로운 세계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바다의 항해. 나라의 지리적 구애를 넘어서는 16세기 폭력의 역사는 하늘이 아닌 바다로부터 감염된다. <마젤란>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근본적인 연출 방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니까, <마젤란>은 지극히 영화적이어서 어색한 작품이다 (이 이론이 성립하기 위해선 먼저 영화의 감독이 '라브 디아즈'임을 인지해야 한다). 이를테면 굳이 마젤란의 죽음을 클로즈업으로 한 번 더 관객에게 상기시키거나, 시점의 구도를 변경하는 몇몇 씬의 상투적인 연출 등을 말할 수 있겠다. 이는 분명 라브 디아즈의 세계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순간이다. 롱테이크로 자국의 역사에 새겨진 비극, 혹은 사건의 현장에 뒤늦게 방문하여 오랜 시간 동안 머물면서ㅡ이미 벌어진ㅡ죽음의 기운을 기어이 관객들에게 전이시키는 미학이 곧 그가 세계를 건설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마젤란>은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 타임과 함께 (약간의) 오락적인 서사가 가미된다. 물론 그의 인장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그럼에도 <마젤란>을 보며 느껴지는 의아함은 끝내 마음 한편을 떠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로베르 브레송의 <호수의 란슬롯>이 생각났다. 이미 폭력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침묵으로 응시하는 카메라, (어쩔 수 없이 폭력의 순간을 담아내야 한다면) 폭력의 찰나가 전시되는 이미지를 회피하고 간접적인 폭력의 영향을 내포하는 숏과 사운드의 마찰음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기법이 브레송의 그것을 닮아 있다. 어쩌면 <마젤란>은 라브 디아즈의 미학적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리핀의 내수적인 역사에서 벗어나 미지의 대륙으로 항해를 떠나는 그의 영화적 모험. 하지만 라브 디아즈의 항해는 마젤란의 지배적 욕망과는 달리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다. 약탈이 아닌 시야의 확장을 위한 항해. 포르투갈을 경유한 그의 다음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 라브 디아즈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