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드덕

사일런트
평균 4.0
일본에는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우생보호법이라는 게 있었다. 국가 주도하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우생수술’이라 칭했던 불임 수술 혹은 임신중지수술을 강제로 실시한 것이다. 이는 '우월한 유전자'만을 남기도록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는 우생사상, 즉 우생학(優生學)의 산물이다. 남자주인공 소우가 고등학교 졸업 후 청각을 잃게 된 건 유전병에 의한 것이었고, 소우의 누나는 임신한 아이가 동생처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태어난 아이에게는 결국 유전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아직 방영되지 않은 9화에서 소우의 조카 이름이 유우키라고 나오는데, 해당 회차 자막에 나온 이름 표기로 일본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장애 없이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優生(우생)이라고 지은 것이다. 生의 훈독 중에 き(키)가 있긴 하지만 優生을 유우세이가 아닌 유우키라고 읽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일본인들도 자막을 켜기 전까지는 유우키의 한자 표기가 優生인 것을 알아채지 못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단어를 자막 기능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됐을 거라는 것이다. <사일런트>의 각본을 쓴 우부카타 미쿠는 인터뷰에서 일본어만의 장점, 재미, 잔혹함을 쓰고 싶어서 일본인들과 일본어를 아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일본 시청자들은 일본어를 안다는 죄로 불행히도 이 '잔혹함'에 노출되고 만 것이다. 참고로 우부카타 미쿠는 올해 8월까지 산부인과 간호사로 일했다고 하며 때문에 우생보호법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의견이 있다. 이 작가에게 장애란 결국 창작자로서의 재미를 충족시키고 자신이 쓴 이야기를 독특하게 만들어줄 도구에 불과했던 걸까. 2018년 1월, 이 우생수술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집단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5월, 20년이 지나 민법상 권리 소멸로 배상 요구는 기각되었지만 우생보호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기사를 찾아 보니 신체 구속이나 마취약 사용 혹은 대상자를 속여서 강제로 수술을 실시하는 것도 허용한다는 후생성(일본의 보건복지부) 통지가 있었다고 한다. 정부의 압박에 지자체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대상자를 색출하기도 했다고. -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 중 이렇게 말했다. “자막의 장벽을,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그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자막을 선호하지 않아 수많은 외국어 작품들의 재미를 놓치는 이들에게 하는 조언이었다. 1인치의 장벽을 허물고 자막을 통해 웬만한 해외 드라마를 다 보는 입장이라 이 얘기에 지극히 공감했다. 사일런트 작가의 인터뷰를 접하고 전에 남긴 평을 삭제했다. 일본어가 아니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 표현을 각본에 많이 써서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이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거고 솔직히 해외에는 방송되든 딱히 엄청 기쁘진 않고 관심 없으니 일본인과 일본어를 아는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자막 제작에 열과 성을 다한 사일런트 번역자와 잘 보던 해외 시청자들을 동시에 힘 빠지게 만든 인터뷰였다. 수출왕 히가시노 게이고도 아니고 말맛왕 쿠도 칸도 아니고 히트왕 노기 아키코도 아니고 명작왕 사카모토 유지도 아니고 올해 갓 장편 데뷔한 신인 작가의 입에서? 비단 일본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자국어로만, 원어민과 자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만 말맛과 언어유희,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표현이 많다. 때문에 번역가들이 늘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번역가가 해당 외국어 뿐 아니라 자국어에 대한 이해도도 뛰어나야 하는 이유다. 자막에 허용된 시간 안에 뜻이 바로바로 읽히면서 대치하기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아야 하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의 의역과 오역은 감안한다. (발번역 제외)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작품을 통해 서로의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한다. 단순한 소비에서 더 나아가 그 나라와 사랑에 빠지고 그 나라에 관해 더 알기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심지어는 그 나라로 여행이나 유학을 떠나기도 한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고, 이런 게 진정한 세계화의 의미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자가당착형 인터뷰였다. 특히나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농인과 청인의 소통'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를 썼으면서 말이다. "韓國ドラマとか洋画がそんなにハマらない理由て わたし日本語が好きだからです。" 한국 드라마나 외국 영화에 그다지 빠지지 않는 이유는 제가 일본어를 좋아해서입니다. (사일런트 작가 인터뷰 중) *영상에서 들리는 대로 받아적었지만 자격증 없는 야매라 틀릴 수 있습니다.* ???? 사고의 흐름이 튀는 세상 신박한 문장. 이것도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서 의미가 전달되지 않은 듯. 해외 콘텐츠를 볼 때도 어차피 자국어 자막으로 볼 텐데 어떻게 저런 식의 결론이 나오지? 각종 해외 콘텐츠 즐겨보고 2개 국어를 하지만 저는 한국어와 한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데요...ㅠㅠ 그만큼 타국의 언어와 문화도 존중하고 여러 작품을 통해 오늘도 다름을 배운다. 사일런트 작가는 아마 이해 못하겠지만. 오피셜히게단디즘이 부른 OST 제목도 subtitle이고, 농인들이 수어를 하는 장면에서는 소리 없이 자막이 깔리면서 자국 시청자들(=청인)도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자막 없이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을 역으로 간접 체험하게 된다고 지난 평에 적었는데. 내가 작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모양이다. 봉준호 감독이 말한 1인치 장벽과는 반대되는, 일본 드라마는 앞으로도 절대 '세카이'를 노리지 않고 내수용으로만 풀겠다는 의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력을 다해 세계 진출을 노리는 일본 방송계는 머쓱하겠다. 고도의 <일본 침몰> 제작진과 쟈니스 돌려까기? 근데 아무래도 포스터 사진 작가 혼 좀 내셔야 할 듯. 포스터 촬영현장 보니까 한국 화보들 레퍼런스로 친히 프린트까지 해서 참고한 거 사진에 다 나오더라. 심지어 한국 드라마 <런 온>, <사내맞선> 커플 화보. 연출도 <그 해 우리는>과 비슷하다고 일본 시청자들이 영업. 일본어가 아니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왜 제목은 사일런트인 건지. 결국 본인이 생각하기에 일본어 제목으로는 도저히 원하는 의미가 전달되지 않아서 영어를 쓴 건 아닌가. 사실 사일런트가 외래어가 아닌 순 일본말인데 내가 JLPT 1급이 아니라 모르는 걸까? 일본어'만'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터득하려면 제가 아직 수행이 부족한 것 같아서 하차합니다. 극 중에 내포된 작가의 의도를 알아들었다는 착각에 빠져 본래의 주제를 곡해했으므로 별점 수정. 사실 3화 이후로 재미가 떨어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단절을 오히려 심화하는 느낌이라 안 보고 있었는데 미련 없이 놓을 수 있게 만들어줘서 고마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