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C.

면도날
평균 4.1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읽을 때, 그리고 다 읽었을 때 계속해서 드는 의문은 "왜 제목이 면도날일까?" 였다. 그래서 몇번이고 이 책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문장을 곱씹어 보았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우파니샤드는 삶과 죽음, 사후에 대한 철학이다. "죽음 뒤에는 무엇이 오는가?" 이 문장이 우파니샤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생각해보면 면도날은 다름아닌 죽음을 의미한다. 면도날, 즉 죽음을 넘어서서 구원으로 이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단어는 기독교적인 향이 짙지만,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기독교적인 구원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쓰여있는 작가의 생각을 읽어보면 등장인물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각자의 구원이 다름을 의미한다. 이사벨은 안정됨과 동시에 화려한 삶을, 수잔 역시 안정과 예술적인 삶을, 엘리엇은 속세의 정점에 서는 삶을, 래리는 진리를 찾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삶을, 소피는 죽음을 각자의 구원으로 여긴다. 하지만 진정으로 면도날을 넘어섰는가 그렇지 못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면도날을 넘어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내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들 안에 내가 좋은 모습으로 살아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장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래리와 엘리엇의 삶을 들여다보자. 엘리엇은 분명히 본인이 원하던 삶을 살았다. 사교계에서 성공했고 귀족 작위를 받았으며 수많은 파티를 주최했고 수많은 파티에 초대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말년에 성당을 지었다는 것이다. 얼핏보면 성당을 지었다는 점에서 신앙심이 깊으며 자신의 삶 끝자락에서는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은 그렇지 않다. 그는 그 성당을 자신의 묘자리 정도로 생각했으며 죽는 그 순간에도 "천국에는 빌어먹을 평등이 없기를"바란다. 래리는 속세에서 성공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뒤로한 채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그 삶은 바로 "진리"를 찾는 것.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진리를 계속해서 찾아 헤맨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만의 답을 찾아 그 깨달음을 타인들과 공유하고자 책을 출판하고 속세의 가장 밑바닥으로 스스로 걸어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연못에 돌을 하나 던지더라도 던지기 전의 우주와 던지고 난 후의 우주가 같다고 할 수는 없어요." 각자가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사교계의 수많은 파티에 참석하며 찾는 삶의 의미와 진리를 찾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며 찾는 삶의 의미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떤 삶을 살던 그것은 분명히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어차피 면도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