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봄바람은 황사를 달고 다녔지만
황사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중학교때 처음 마스크란 걸 처음 써봤는데
무슨 용도로 썼을거라 생각하는가.
그야말로 겨울철 방한용으로 마스크를 착용했다면
믿을 수 있을런지.
지금의 버프나 스카프 혹은 목도리는 언감생심
있지도 않았고 남자들이 목도리를 한다는 것은
왕따를 자처하는 일. 그땐 왕따도 없었지만.
올핸 집밖을 나설 때 핸폰을 두고 갈순 있어도
마스크가 없으면 못나간다.
작년에 비하면 황사는 고사하고 미세먼지도 없는
청명한 봄날이었음에도 마스크는
우리가 옷을 챙겨입고 나가듯 필수아이템이 되었다.
조금 불편한 거 빼곤 난 마스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못생긴 내얼굴을 감출수 있으니 당당히 활보하고
염불하는 중마냥 중얼거려도 목소리만 낮으면
통화하는 걸 들키지 않을 수 있다.
거기에 모자만 쓰면 썬크림 안 발라도 되고.
하긴 바른 적도 없지만.
하여튼 세상을 걷느라 영화를 안보게 되고
안보니 남의 코멘트만 기웃거리며 참견을 한다.
거기에다 같이 일하는 아들놈에게 한 소리를 들어서다.
‘ 전 이제 영화평은 못하겠어요.
하느라고 하는데 음식이 식었네, 왜 혼밥은 안되냐,
손님이 많아서 불편하단 거 또 뭐냐. 라는 둥.
리뷰 올라 올적마다 토가 나올듯이 긴장되고 무서운데,
영화 만드는 제작진이나 배우들의 심정은 어떻겠어요.
잘났어도 연예인은 제 체질에 안 맞았을거에요. ‘
말은 기특하지만, 나는 다르다라고 대화를 이어 갔다.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개선점을 찾아내는 게
그게 또 오너의 몫이 아니겠냐고.
나도 말만 그렇게 하고 비판한 놈들 찾아가 멱살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우리의 적은 비판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가게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일터,
영화인 여러분의 적은 비평가가 아니라
영화에 무심한 일반인들이란 걸 명심하자.
그럼에도 범털이란 영화는 시나리오 구성 연기
뭐하나 봐줄만한 것이 없다.
오죽하면 현진영의 ‘소리쳐 봐’란 곡이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올 적에
현진영이 이렇게 노래를 잘했어? 놀랐다니까.
철 지난 액션은 고사하고 대화는 쌍팔년도 식인데
요즘 트랜드랍시고 어울리지 않는 브로맨스 삽입은
역겹기 조차 하더라.
적어도 타켓관중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정하고
제작해야 하는거 아닌지.
나같은 구멍가게 하는 놈도 물한잔, 셀프대 등
직장인 구미에 맞춰 노력해도 늘 어렵기만 하더라.
근데 그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제작하는 영화가
이 따위로 어색해서 보는 사람이 오그라들고 눈살이
찌푸려 진다면 안되는 거 아닌가.
이 영화는 장르에 비하여 고증도 약하고 처절함은 없고
그냥 비웃음만 가득한 중학생 수준의 이해력으로
제작되어진 그냥 바보같은 영화이다.
어제 외식이랍시고 먹은 싸지않은 세수대야 냉면처럼.
좀 덥다고 먹었는데 너무 뻔한 육수에
면발은 흉내만 내었고 진정성이 전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