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정환

정환

6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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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영화 ・ 2002

평균 4.0

여러분이 없었다면 우린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살인자는 대중의 협조와 공모 없이는 유명인이 될 수 없으니까. 우리가 조명하는 모든 것들을 조종하는 시스템. 쇼에 불과한 복화술에 열광하는 우리를 조롱하는 도시. 고함 속에서 들을 수 없었던 진실과 순수한 영웅은 절대로 주목받을 수 없는 현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올해가 어느덧 20년대의 시작이다. . 다들 자신이 초래한 일들인 자업자득인 세상에서 복수와 응징은 내가 하겠다고 나선 이들이다. 명분이 있는 살인인가 명분을 만든 살인인가. 여기서 주의할 점. 경고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살인은 분명했지만 범죄는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에 자극을 느꼈다면, 당신은 이들의 복화술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대중은 자극을 느껴야지 그제서야 주목한다는 점을 이용한다. 이유는 만들면 되니까 동정이던 충격이던 우선 관심을 끌어야만 한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그 자극적인 살인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당당하고 나쁜 인물들과 멍청하고 착한 인물들이 한 시대를 구성하는데, 당당한 이들은 멍청한 이들을 유혹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누가 봐도 정의롭지 못한 이 시대를 향한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화려한 껍데기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보다 슬플 수도 없다. 이 시대에서는 유일하게 순수한 영웅에게는 눈길조차 보내지 않는다. 모두 나쁘고 당당하며 화려한 이들에게만 주목을 하는데, 이름조차 모르는 영웅은 그들에게 이용할 때만 그의 온전한 이름을 부른다. 안타까운 건, 그 영웅은 참 초라하게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니 그저 좋다고 웃고 있다는 거다. 우리가 열광하는 모든 것 뒤에는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다. 각본에 따라서 배우를 철저하게 조종하고, 이에 환호하는 우리를 조롱한다. 영화는 우리가 바라보는 웃고 우는 모든 것들은 철저히 가짜라고 고발하는데 슬프게도 이 시대에서 누군가가 진실을 외쳐도 모두가 가짜에 열광하고 있는 그 사이에서 진실은 들리지도 않는다. 대체 어떤 바보가 그 가짜에 넘어가냐. 참으로 우습게도 이러한 굉장히 클래식한 방법들이 여전히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우린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 대중이 없다면 그들은 절대 주목받지 못한다. 우리가 욕을 하고 비난을 하는 것마저 그들을 이목 시키는 수단이다. 록시 하트와 밸마 켈리. 이 살인자들은 대중을 주목시켰다. 살인자는 대중의 협조와 공모 없이는 유명인이 될 수 없다. 이 또한 안타까운 시스템의 한 가지 예시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것에 흔들리는 대중이었는가를 떠올려봐야겠다. 1920년, 재즈의 시대. 우리가 조명하는 모든 것들을 조종하는 도시. 쇼에 불과한 복화술에 열광하는 우리를 조롱하는 도시. 고함 속에서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진실과 순수한 영혼은 절대로 주목받을 수 없는 현실들이 시카고를 대표한다. 괴로운 현실과는 대비되는 록시의 화려한 상상은 마침내 현실로 옮기는 데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꿈 아니면 환영이었는데, 이제 그녀의 무대는 그녀의 상상들보다도 더욱 화려해졌다. 하지만 만일, 그녀를 비추는 무대가 사실은 철저한 비즈니스 쇼였다면, 과연 이것은 환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소 염세적인 1920년대가 마무리될 때 즈음, 그렇게 환영을 쫓는 그들에게는 대공황이 찾아왔다. 거짓도 진실이 되고 진실도 거짓이 되는 그 세상에 거대한 혼란이 찾아왔고 그 이후로 시간은 많이도 흘렀는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도 가짜들에 열광하는가. 그대는 진실을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완벽하게 조종하는 미디어와 조롱당하는 대중의 시대. 우리는 지금 정말로 달라졌을까? 사실은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이 세련된 영화는 만든 지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대적이고, 1920년대의 메세지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여전히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감이 안 잡힌다면, 2020년. 올해가 벌써 새로운 20년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