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조수현

조수현

3 years ag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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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시리즈 ・ 2022

평균 3.9

각기 다른 성격과 욕망을 지닌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이야기 전체를 힘차게 이끌어가는 드라마가 화제성을 획득하며 좋은 평가를 받는 현장을 보는 것은 기쁘고 흐뭇한 일이다. 배우뿐 아니라 감독, 작가, 미술 감독 등 주요 제작진까지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작은 아씨들>을 나 역시 응원하는 마음으로 시청하기 시작했다. 세 자매의 기묘한 우애, 인주와 화영의 오묘한 우정, 인주와 도일의 미묘한 관계 등은 확실히 매력적인 요소다. 김고은은 어떤 작품에서든 연기를 얼마나 잘 해내느냐와는 별개로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배우고, 그가 맡은 주인공 오인주는 끝 간 데 없이 어둡고 비관적인 극중 세계를 (소위 말하는 "흑화" 하지 않고) 홀로 맹하고 명랑한 채로 돌파하니 외려 새롭다. 분명 장점이 꽤 많은 드라마가 맞다. 하지만 칭찬과 호평 일색인 여론과 달리 개인적 감상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차적으로 실망스러워만 갔다. 장점보단 단점이 훨씬 더 크게만 보여 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뜨겁고 치밀한, 혹은 서늘하고 지적인 현대 스릴러 버전의 《작은 아씨들》을 기대했는데, 거창하고 우아한 척하는 <펜트하우스>나 <스카이 캐슬>을 본 느낌. 뭐, 처음부터 그게 의도였다면 그냥 장르를 착각하고 모두가 즐거운 판에서 혼자 팔짱 끼고 본 내 오판과 눈치 없음인 거고, 의도와 달리 납작한 그림이 나온 거라면 작가가 제 역량을 과신한 거겠지. * 힘없는 사람들이 비리와 악행으로 얼룩진 거대한 악에 맞서는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단순하고 납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다. 악의 얼굴을 미리 밝히고 가면 그 실체가 웬만해선 충격적일 게 없고, 그걸 파헤쳐 가는 이야기는 특별히 영민하거나 입체적이지 않은 이상 여간해선 큰 감흥을 주기가 어렵다. 그래서 무엇보다 악의 실체와 이를 추적하는 인물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섬세한 묘사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지점에서 특별한 기량과 매력을 드러내지 못한다. 작품이 형상하는 가난과 부는 양쪽 모두 선정적이지만 평면적인 말들로 표현돼 그저 얄팍하기만 하고, 막대한 부를 가진 유력 가문과 그렇게 상상해 낸 악한 부자의 삶은 여느 통속극처럼 뻔하다. 엄기준이 연기한 박재상은 비슷한 류의 역할을 반복해 맡아온 배우의 전작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고, 엄지원이 분한 원상아는 너무 전능한데다 너무 연극적인 탓에 특유의 말투만큼이나 극에서 동동 떠있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죽음의 푸른 난초' 같은 장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또한 전체 서사를 다소 유치하게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모든 의문의 죽음의 순간에 난초가 있고 그것이 거대한 악의 무리들과 연결된다는 설정은 판타지 스릴러에 가깝도록 현실감이 적고, 그 탓에 그 난리를 다 보고 겪고도 난초를 선물 받아 들고 와서는 향기를 들이마시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여태껏 그 많은 사고들에서 단 한 번도 해당 내용에 의문을 제기한 이가 없다는 사실 같은 부분들에도 별 설득력이 없어 중심 서사와 캐릭터들에 이입하고 애정을 갖기 어렵게 한다. 잔뜩 몰입하고 봤는데 갑자기 유령이니 악마니 운운하는 오컬트 물로 끝나버려 맥빠지는 서양 공포물처럼, 푸른 난초와 정란회라는 드라마의 중요 장치는 극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는 걸 자꾸만 방해한다. * 진화영의 죽음 이후로는 작품의 매력이란 것도 함께 증발한 듯 극의 완성도는 가장 몰입력 있는 1화에서부터 점점 미끄러져내려가는데, 이후 계속 엿보이는 초짜 같은 전개가 계속해서 의문을 자아낸다. 예를 들면 시청자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자꾸만 뒤늦게 알아차리는 주인공들 탓에 박자감이 엇나간다거나 중요한 부분들을 장면으로 보여주는 대신 대사로 모조리 설명해 버린다거나 하는 것들. 가령 이미 박재상 일가가 모든 일의 중심에 있을 것임이 1화부터 훤히 보이는데 전체 서사의 중반인 5화에 가서야 이를 대단한 사실로 부각하며 엔딩을 맺는 건 좀 의아한 전개 방식이다. 원상아가 박재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인 것 (혹은 그 이상의 존재인 것) 역시 진작에 짐작 가능함에도 불구, 이를 엄청난 반전처럼 그리며 캐릭터의 대사와 몸짓 하나하나에 너무 과하게 힘을 주는 것 역시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극의 품을 드러낸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동명의 작품을 모티브로 삼은 이상 광의에서든 협의에서든 '자매애'가 가장 중요한 관계성이자 장치로 사용되어야 할 작품에서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애증이든 애정이든 자매들 간의 끈끈한 관계성 자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별달리 심도 있지도 않은 소재들과 기타 인물들에 집중하느라 정작 '아씨들'의 이야기를 놓쳐버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결정적인 오점이다. 자매애를 화영과 효린에게로까지 확장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 감정선들이 대단히 얕고 설명적이라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정형화되어 있어 다양성은 획득할지언정 개개인의 깊이감은 낮은 캐릭터들, 문어투의 어색하고 밋밋한 대사, 일관되게 과하고 촌스러운 연출, 그리고 이런 단점들 탓에 좋은 연기톤이 나오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자연적으로 (딱 한 사람, 추자현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의) 작위적이고 과장된 연기들까지. 극은 작가와 (특히) 감독, 그리고 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너무 과잉되고 나태하다. 동적 노력이 나태했다는 뜻은 아니다. 노력의 흔적은 많은 곳에서 느껴진다. 감독은 최선을 다해 감각적으로 보이려 노력하나 모든 곳에 너무 힘을 주니 오히려 감각 없게 느껴진다. 배우들도 모두 열연했다. 그러나 호연은 아니다(쏟아지는 찬사들과는 달리 나는 거의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다 넘치거나 부족하다 느꼈고, 이는 전적으로 넘치거나 부족한 연출과 대본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서사 전개와 연출은 모두 너무나 관습적이고, 그 탓에 빛나는 미술 장치마저 제 빛깔을 다 뽐내지 못한다. 대사들은 여러 군데서 코웃음이 날 정도로 유치하거나 단순하고, 트릭으로 활용하는 반전은 예측 가능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와 반전에서 사용되는 기법들인 한 인물만 인지하지 못하게 한 채 진행하는 적을 속이기 위한 쇼, 녹화된 화면을 이용한 대중을 향한 폭로, 플래시백과 내레이션의 편의적 사용을 통한 반전 설명 등은 이미 많은 장르물에서 지겹게 봐온 작법이다. 아주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말이 안 될 정도로 허술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 너무 많다는 점도 이 드라마와 여타 막장 통속극들 사이의 차별성을 느끼기 어렵게 하는 요소다. 드물게 등장하는 날카로운 대사가 그나마 명성 높은 작가의 인장을 드러내지만 그마저도 몇 군데 이상은 아니다. 처음으로 혼자서, (원작이 따로 없는) 오리지널 이야기를 창작해낸 이 작가의 필력이란 것에 의심이 생겼다. 《작은 아씨들》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나 그 거대한 이름값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흥미로운 출발지에서부터, 진부한 행로를 거쳐, 시시한 종착지에 도착한 작품. 이 드라마는, 걸작으로 부풀려진 범작이다. +) 이건 그냥 혼잣말 같은 푸념이지만 웬만하면 (리메이크가 아닌 이상) 기존 외국 작품들 제목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찾으면 온통 한국 드라마 얘기 뿐이고, '렛 미 인'을 검색하면 웬 메이크 오버 예능이 먼저 뜬다. 이제는 '작은 아씨들' 차례인가. 그렇게 빌려다 쓴 제목이 원작의 명성에 그림자를 지게 하는 수준이면 더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