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천수경

천수경

5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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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레터

영화 ・ 2020

평균 3.3

영화 속 편지들은 자꾸 수신인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누군가 가로채서, 주소를 몰라서, 팔을 다쳐서. 하지만 그 편지 속 마음들이 가닿아야 할 사람에게 결국은 도달하는 다행스러운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영화가 끝나고 친구와 영화 자체에 대한 얘기보다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한 것 같다. 나는 이와이 슌지가 미련의 화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끝내 <러브레터>로는 부족해서 <라스트 레터>를 만들어야 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가 한이 되어 자꾸만 이런 이야기들을 만드는 것만도 같다. 고등학생 쿄시로가 쓴 연애 편지들이 사랑으로 보답받지는 못했지만 필력을 인정 받아 미사키로부터 "넌 소설가가 될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소설가가 된다. 이와이 슌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사랑을 쏟아 부었고, 상대가 다 받아주지 못한 사랑이 세상 곳곳에 쏟겨서 그걸 주우러 다니다가 영화 감독이 된 것일지 궁금해졌다. 시어머니의 썸남이 'either'를 'both'로 고쳐준다. 둘 중 하나인 것이 아니라 둘 다, 였음을 알게 되는 건 얼마나 귀한 깨달음인가. 쿄시로의 첫사랑은 미사키와 유리 둘 다의 이야기였다. A가 B를 좋아하고 B가 C를 좋아하는 상황은 지금 이 순간 우리 행성에서 8000만 건 정도가 벌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와이 슌지도 A였던 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 돌이켜보니 너무 소중했던 기억이었음이 분명하다. 자기가 C보다 결코 덜 행복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저 안타까운 상황이 비극보다는 추억이라는 단어에 어울린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잘 주장할 수 있을 지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쿄시로가 미사키의 졸업 연설문을 첨삭해줄 당시엔 둘 다 몰랐을 것이다. 그 글이 아유미라는 여자아이에게 가닿을 줄은. 미사키가 동급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의 유통기한이 아주 길어서 먼 훗날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마음의 전달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맡고 싶은 역할이기도 한 것 같다. 오래 전 어떤 순간이 있었고, 그 순간 이런저런 사람들이 여러 생각을 했는데 누가 좀 알아주면 좋을 것 같다고,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