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석미인

석미인

5 years ag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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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끝낼까 해

영화 ・ 2020

평균 3.3

2020년 09월 09일에 봄

얼어붙은 양들을 한켠에 치워놓은 장면이 잔상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시간을 통과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정지해 있고 시간이 우리를 통과하는 것이다'라는 대사도. 우리는 시간이 되어 그들의 과거를 보고 그들의 미래를 보고 그들이 떠난 후를 보았다. 영화에서 인용한 톨스토이의 구절은 아직도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다. 가정이 아니라 표정이 원문에 가깝다는 해석을 읽은 기억이 난다. 행복한 표정은 비슷하지만 불행의 얼굴은 다양하다. 태어날 때의 얼굴은 다 같은 표정이지만 죽음의 얼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얼어 죽어 한켠에 놓인 양들. 눕힌 방향만 다른, 마지막 표정과 한 가지 질문만 가진, 그도 있고 그녀도 있는, 여러 구의 시체가 된, 오랫동안 같은 처지에 있을 자신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고 서문을 쓴 시인이 있었다. 이제는 죽은, 먼 집으로 혼자 돌아간 그 시인의 '빙하기의 역'이라는 시는 이렇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얼어붙은 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내 속의 할머니가 물었다. 어디에 있었어? 내 속의 아주머니가 물었다. 무심하게 살지 그랬니? 내 속의 계집애가 물었다. 파꽃처럼 아린 나비를 보러 시베리아로 간 적도 있었니? 내 속의 고아가 물었다. 어디 슬펐어?   그는 답했다. 노래하던 것들이 떠났어 그것들, 철새였거든 그 노래가 철새였거든 그러자 심장이 아팠어 한밤중에 쓰러졌고 하하하, 붉은 십자가를 가진 차 한 대가 왔어 //  빙하기의 역에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 우리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 아이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낙과처럼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내 속의 태아는 답했다, 잘 가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는 죽음과 회한에 있어 늘 비관과 허무로 골똘하다. '모든 건 죽어야 한다. 그건 진실이다. 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려는 이들도 있다. 죽음을 초월해 살 수 있다고 그건 상황이 나아질 거라 믿는 인간만의 환상이다. 자신의 죽음이 필연적임을 아는 동물은 인간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동물들은 현재에 산다. 인간은 그럴 수 없기에 희망을 발명한 거다'   죽음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나와는 다르다. 허나 죽음이 주는 무력함 앞에서 다음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은 뭔가.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낸 것인지도 모르리라. 죽은 시인의 서문은 이렇게 끝난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난다. 다음 역을 향하여.라고   비가 온다. 창문을 닫는다. 빗소리에 온몸을 두들겨 맞더라도 우리는 자두어야 한다. 그리고 또 일어나야 한다. 내 창 밖에는 궂은 날에도 언제나 밭을 가꾸는 노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찰리 카우프만보다 내 생에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