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JHs

JHs

8 years ago

4.5


content

버닝

영화 ・ 2018

평균 3.5

벽에 비친 햇빛, 울음 없는 고양이, 행방이 묘연한 우물, 깨끗이 정돈된 이불과 침대. 뚜렷이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어느 것 하나 실체가 없다. 해미의 상실감, 벤의 공허함, 종수의 무력감. 담을 그릇도 없이 흘러넘치는 그들 감정은 하나같이 실체 없는 허울 앞에서 미끄러진다. 때 묻은 벽지에 부딪혀 난반사된 그들 감정과 분노는 누구라도 태울 준비가 되어있기에 땅에 널린 비닐하우스는 그들의 가장 손쉬운 제물이다. 기성들로부터 상실과 함께 존재론이라는 이름의 병을 물려받은 청년들. 아비로부터 헛간 방화의 원죄를 물려받은 아들은 이제 비닐하우스를 제 발로 찾아 나선다. 불투명한 비닐 너머에 제 욕망과 분노의 근원이 존재할 거라 믿고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그 비닐하우스에 라이터를 던진다. 그야말로 방화의 시대. 오늘도 텅 빈 비닐하우스는 방향을 잃은 분노 앞에서 애꿎은 얼굴을 하고 녹아내렸다. 존재론의 역병에 걸린 사람들. 실체 없는 무력감이 두려워 허수아비를 만들고, 그런 상실이 미칠 듯 견딜 수 없어 방화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잃음이 보편화된 시대에 실체의 집착을 놓고 사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지만, 상실 앞에서 체념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일까. 닿을 수 없는 대상을 손에 쥐고자 쏟아지는 저녁놀을 받들며 춤을 춘다. 가닿지 못할 무언가를 향해 두 팔을 뻗지만 이내 땅거미와 함께 가라앉는 석양빛. 몰려오는 상실감에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눈물, 위로 잦아드는 흐느낌은 다만 염세를 흩뿌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