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WelcomeTo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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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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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영화 ・ 2017

평균 3.9

이번작에서 놀란의 유일한 실수는  전쟁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가장 뛰어난 사실주의 감독이라 불리는 놀란이, 그야말로 전쟁의 본질이자 '사실'인 참혹함을 빼버린 것이다.   전쟁은 사람을 죽인다. 내 부모가 죽고, 자식이 죽고, 연인이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직접 살인자가 되고, 국가에 의해 살인자가 되게끔 떠밀린다. 누군가의 아버지를 죽이고, 아들을 죽이고, 애인을 죽인다. 피가 튀고 살점이 찢겨도, 시뻘건 강물이 흐르고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도, 죽지 않기 위해 죽여야 하고, 지키기 위해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것이 폐허가 된다. 아니, 생명을 앗아가는 것 뿐 아니라 그토록 오랫동안 지켜온 우리의 인간성까지 죽인다. 전쟁이란 그렇게 비정하고도 참혹한 것이다.  놀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의 키워드는 체험과 몰입이었다. 아이맥스로 볼것을 강력히 추천하고, 실제 전투기를 사서 찍은 것을 홍보했지만, 내게 전쟁은 체험놀이 따위가 아니기에, 전쟁의 참혹함을 대신할만한 그 어떤 것을 느낄 만큼 몰입되진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크리스토퍼 놀란이었다. 인터스텔라 이후 3년의 기다림  끝에,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본 <덩케르크>는 과연 수작이었지만, 결코 그의 명작이라 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놀란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창의적인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실화 영화라니, 상극일 뿐 아니라 새로움이 없었다. 교차편집은 이미 <메멘토>에서 예술적으로 보여주었고, 이번 영화에서 3가지를 교차시켰다고는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었을 뿐이다. 영화를 다큐로 만든 것이 새롭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것이 결코 나에겐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야기가 없다. 캐릭터가 없다. 대사가 없다. 오직 놀란의 뛰어난 연출력과 한스 짐머의 긴박한 음악만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플롯은 너무나 단순하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탈출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놀란은 서사의 형식이 아닌, 체험을 택했다. 하지만, 이야기 없는 개개인의 인물들에 감정이 이입될 리 없고, 이입되지 않는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에 공감될 리 없고, 그것이 관객에게 하나의 철학으로 받아들여질 리 없지 않은가.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던, “우리는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화합해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영화의 메시지 말이다. 놀란은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흡입력에 올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배제한 듯 보인다. 하지만, 나의 감상은 마치 4DX 전용의 내용 없는 체험 영화를 본 듯 허무했다. 놀란이 그토록 강조한 것처럼 꼭 아이맥스로 보길 추천한다. 놀란이 만든 전쟁영화가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하겠지만, 전쟁영화로써 <덩케르크>는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