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영알못이란, 감식안이 삐꾸인데다가 영화를 보면 '재밌다' '배우가 이쁘다' 빼고는 아무 소리도 할 줄 모르는 텅 빈 소양을 가지고 있는 힙스터들을 낮춰 이르는 말이다.       소풍CGV에 한 영알못이 살았다. 이 영알못은 CGV SVIP를 찍을 정도로 영화를 봐댔는데 아직 플래시백만 두어번 나와도 줄거리를 못따라가게 될 정도로 이해력이 딸리며, 영화가 끝나면 나오면서 꼭 'ㅇㅇㅇ 해석'을 쳐서 읽어봐야 자기가 뭘 본건지 대충이라도 파악할 수 있는 상태였다. 마치 야자시간에 머릿속을 텅 비우고 수학의 정석을 들여다보던 그때처럼, 영알못은 그저 습관적으로, 물 한 병 사들고 영화관에 가서 원없이 스크린을 쳐다보다 나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알못은 자기가 남들보다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더욱 영잘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 소풍 CGV의 지점장이 간만에 CGV 아트하우스에서 자기 돈 내고 언노운 걸을 보다가, 영화가 끝난 뒤 '이것은 다르덴 형제의 최고작이 분명하다'며 박수치는 영알못을 보고 대노해 "어떤 놈의 영알못새끼가 로제타, 자전거 탄 소년을 두고 이걸 다르덴 최고작으로 꼽는단 말이냐?" 하고, 곧 명해서 그 영알못을 잡아 가두게 했다.     소풍 CGV의 다른 영화팬들은 저 사람은 애초에 스스로 무얼 판단할 능력이 없어서 잡아 가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해 딱하게 여겼지만, 무슨 도리가 없었다.     영알못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해결할 방도를 차리지 못했다. 그 어미가 역정을 냈다.   "아들은 웬종일 영화만 보면서 멀쩡히 살아있는 이 어미를 욕되게 하더니, 이제는 어미 가슴에 못까지 박는구나. 쯧쯧, 영알못."     헌데 그 마을에 사는 한 영잘알이 가족들과 의논하기를,     "나는 영잘알인데다가 필력이 뛰어나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해 왓챠에서 영향력 있는 네임드가 되었거늘, 이 곳 한국의 씨네필 문화는 항상 숨막힐듯 긴장되어 쉽게 피로해지고,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태클을 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니 더이상 영화보고 평하는 것이 재미있지가 않다.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름 대접받고 나 또한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도움되는 취미도 아니고 사실상 오타쿠와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으니 이것이 도저히 부담되어 견딜 수가 없다. 또한 이젠 영화를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고 매 순간 엄근진한 태도로 영화를 뜯어보려 하는데다가 '이 영화엔 몇점을 줄지'만 머릿속에 자꾸 맴도니 나는 영화를 보면서 진정 즐겁기를 원하는데 그럴 수 없다. 마침 영알못이 영화력이 모자라 아주 난처한 판이니 내가 그 왓챠 계정을 사서 가져보겠다."     영잘알은 곧 영알못을 찾아가 보고 자기의 영화력을 주겠다고 청했다. 영알못은 크게 기뻐하며 승낙했다. 그래서 영잘알은 영알못 등에 손바닥을 얹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이 쌓아온 고전 지식과 감독들의 이름과 사조의 계보, 복잡한 영화이론들을 전부 전수해주었다.     지점장은 영알못의 눈에 갑자기 총기가 돌고 숏과 신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으며, 모든 감독들의 대표작을 알고 있다는 것을 놀랍게 생각해 몸소 찾아가 영화력을 테스트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영알못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평론가와 대화를 나누며 결코 지식 면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지점장은 깜짝 놀라 캔커피를 뽑아주며 "귀하는 갑자기 어찌 이다지 영화력이 상승하였는지요?" 하고 말했다.     영알못은 더욱 거만해져 '돌란은 천재가 아니라 스타' 를 외치며 사정을 얘기하였다. "황송하오이다. 사실은 소풍의 영잘알이 와서 자기의 실력을 주고 내 왓챠 아이디를 사갔으니 이제 나는 영알못이 아니고 이전의 그 영잘알이 영알못이요."     지점장은 감탄해서 말했다.     "영잘알은 다르구나! 나로서는 영알못이 된다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거늘, 기꺼이 자원하여 그렇게 하니 의롭고 어진 일이요, 비천한 것을 가까이 하고 우월한 것을 멀리하지 지혜로운 일이다. 이야말로 진정 영화력을 떠나 평가에 초연하고 남들의 눈치가 아닌 자기 주관으로서의 영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는 진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러나 사사로 팔고 사고서 증서를 해 두지 않으면 '허세충'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 내가 너와 약속을 해서 다른 관객들로 증인을 삼고, 인증샷을 찍어 미덥게 하되, 내가 마땅히 거기에 서명할 것이다"     그리고 지점장은 화장실 벽에 글을 올려 각종 평론가 및 부천의 영잘알들을 모두 모아 식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증서를 만들었다.     <위에 영잘알은 영화력을 주고 영알못의 왓챠 아이디를 얻은 것으로, 그 선호감독은 순서대로 크리스토퍼 놀란, 마이클 베이, 조스 웨던이다.     오직 이 영알못은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나니, 평소에는 영알못이라 하고, 코멘트를 쓰면 모두가 슥 보고 지나가고, 별점을 남기면 다들 보고 의아해한다. 특별히 허세가 넘쳐흘렀던 코멘트는 영갤에 올라와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고, 영화얘기라도 할때 꼈다가는 모두의 멸시와 조롱을 받기 마련이며, 평소에는 아트하우스에서 출입제지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늘 수요일만 되면 예매율 1위인 양산형 한국영화를 예매해서 아주 재밌게 보고 나올 것이며, 영화에 대한 글은 페북에 올라오는 완전해석글만 읽을 것이며, 이동진이 최고의 평론가라고 여겨야 하고, 크리스토퍼 놀란을 무조건적으로 찬양 경배해야 하며, 가장 인상깊게 본 한국영화는 국제시장이나 7번방의 선물이어야 한다. 또한 떡볶이나 햄버거를 극장에 가지고 들어가 냄새를 풀풀 풍겨야 한다. 봉준호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 그 감독 <박쥐> 참 재미없었지' 라고 생각해야하며 이해도 가지 않는 예술영화를 봐놓고 다른 코멘트를 적절히 짜깁기해 허세 가득한 한줄평을 남겨놓아야 한다.     영잘알은 어이가 없어 한참 머엉하니 있다가 말했다.     "아니 영알못이라는건 이거뿐입니까? 저보고 트랜스포머 정주행이라도 하라는 소리신지요. 저는 영알못이 언제나 순수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며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즐길 줄 안다고 들었습니다. 원하옵건대, 좀 더 사람새끼처럼 보이게 증서를 바꾸어 주십시오."     그래서 문서를 다시 작성했다.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영화를 만들때 사선으로 달려오는 기차의 실제 이미지로부터 운동의 미학을 끌어내었다. 그때부터 CG로 못만들어내는 것이 없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화라는 것은 언제나 인문학의 총체이며 첨단의 예술이었다. 영알못은 언제나 재미에만 집착하니, 영화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하품이 나오면 개노잼 똥작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관습적 형식에서 벗어나도 어떤 초짜가 만든 영화인지 궁금해해야만 한다.     관객수 6백만인 영화와 13만인 영화가 있다면 작품성 그딴건 상관없고 더 싸구려 상업영화처럼 보이는 것을 택하며, 그것조차 제대로 이해 못해 남의 별점 눈치 보다가 현학적인 코멘트를 남겨놓으니 어떻게든 영알못임을 들키지 않으려 하고 시네마테크, 아트하우스에는 진짜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결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왜 홍상수와 폴 토마스 앤더슨이 좋은 감독인지 하나도 이해가지 않아도 남들이 하는 말을 따라하면 일단 생기는 까오는 있다. 맨날 영화를 당떨어졌을때 사탕 사먹듯이 인스턴트식으로 소비하니, 이것은 가히….>     영잘알은 증서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나를 장차 예술병 걸린 허세충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고개를 저으며 오즈 야스지로 필모그래피를 정주행하러 가버렸다.   그 후 영잘알은 영알못이라는 단어는 입에도 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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