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마냥 따뜻하기만한 영화에서 느꺼지는 살짝의 불편함 모두가 사랑의 마음으로 준하를 감싸준다. 하지만 과연 학교의 환경이 준하에게도 행복한 환경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떠올랐다. 그 이유는 첫째는 영화속에서 준하가 웃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해서이고, 둘째는 영화 내내 준하는 부정적인 말들속에 둘러쌓여있다는 점이었다. ~하면 안돼, 다신 그러지말자. ~하면 돼 안돼? 물론 준하의 돌출행동에 관한 훈육이라지만 준하의 자율성은 완전히 배제되어있다.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더더욱 필요할 준하에게 하루의 특정시간 교실에 앉아 가만히 있으라는 건 더욱 준하를 가두는 게 아니었을까. 준하가 "답답해"라고 할때마다 주어지는 일말의 자유는 준하로 하여금 모든 돌출행동의 원인이 "답답해서" 라는 이유로 귀결되게 만든다. 그러면 어른들이 이해해줄거니깐. 모두가 노력하지만 나아지는게 없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 모두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우울증 환자에게 마냥 따뜻한 관심으로 던진말도 의도치않게 상처를 줄 수 있듯, 준하에게도 알맞은 말과 환경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 교실에서 단지 물리적으로 친구들과 하루종일 섞여있다고 준하에게 평등한 환경이 아닐 수 있다. 준하에게도 함께 놀고싶은 친구를 선택하고, 원하는 걸 배울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나라엔 그럴만한 환경이 정말 드물것이고, 이는 일반학교들의 숙제이다. 장애아동도 같은 학교에서 맞춤형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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