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일

움베르토 D
평균 3.9
마치 사회적 계급의 위치에 따라 설계된 공간인 듯이 현관 앞의 좁고 더러운 방에는 힘겨운 프롤레타리아들이, 복도 끝의 넓고 휘황찬란한 방에는 부르주아들의 겉치레와 위선이 들끓는다. 부르주아들이 욕망으로 인해 더러워진 내면을 숨기고자 음악 등의 예술로 외관을 치장할 때, 프롤레타리아들은 저마다에 부여된 생존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삶의 투쟁을 외친다. 이미 끔찍한 삶의 경험에 익숙해져 버려 저항의 의지를 모두 잃은 채 그저 하염없이 두 뺨에 눈물만 흘리는 하녀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끝내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현실의 잔인함에 한탄하는 움베르토라는 인물을 통해, 영화는 자본에 지배 당한 세상 속에서 허덕이는 모든 서민들의 비극을 (잔인할 정도로)담담하게 그려낸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자 하는 정신, 그리고 인간과 동물 사이의 연대를 중요시하는 예술관을 보면 켄 로치는 아마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영향 아래에서 탄생한 또 다른 이 시대의 거장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움베르토 D>의 진정한 면모는 ㅡ플라이크(움베르토의 반려견)를 찾기 위해 도축장을 방문한 움베르토ㅡ의 시퀀스에서 그 빛을 발한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모두 움베르토와 플라이크가 꼭 재회하길 바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연대의 희망을 지금껏 같이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이크를 제외한 다른 개들의 죽음에는 상대적으로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을 것이다(아마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은 말이다). 영화는 플라이크가 아닌 다른 개들에게는 어떠한 상징적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결론적으론 그 생명들이 어떻게 되든 간에 우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입에 담기에도 잔인한 말이지만 다르게 말한다면, 움베르토의 존재가 영화 속 타인들에게는 그 개들의 존재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각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바쁜 현대에서 메말라 버린 화합과 연대의 부활과 필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감독의 희망이 현실의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