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신상훈남

신상훈남

2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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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1기: 액션가면 VS 그래그래 마왕

영화 ・ 1993

평균 3.8

2023년 12월 06일에 봄

이 극장판은 '시네마틱 짱구'의 시초인지라 상당히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중반까지의 장면들이 전부 '극장판이 아닌 일반 짱구 에피소드'에서 보일 법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후반부의 '극적 요소'들이 부답스럽게 부각되게 느껴진다거나 결말이 허전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이게 다 '초중반부 짱구 시리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불필요한 장면들 탓이다. 관객들은 이미 충분히 그것들을 봐왔고, 떡잎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액션가면, 왜 살려주시는 거예요? 나쁜 녀석이잖아요!” “검으로 승부내기로 약속했잖아. 이렇게 이기는 건 남자답지 못 한 짓이야.” 굉장히 박수를 보내고 싶은 점은 바로 이 작품이 짱구 극장판에서 신비로운 분위기 연출이 가장 일품이라는 것이다. 사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개연성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그 모든 게 마치 운명처럼(신형만이 바다 사진을 오랫동안 보고 있는 것, 문득 들어간 골목길에 처음 보는 구멍가게, 거대한 액션가면 인형) 그려져 있어 더욱 드라마틱했고 여진이 깊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봤으면 어땠을까.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봤던 극장판이기에, 어딘가 객관적인 평가가 힘든 것 같다. “작은 인정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지.” “이 세상에 너한테 배울 건 하나도 없다.” 장미꽃 소년단에게 추격당할 땐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나태함과 '극장판'이라는 타이틀이 아까울 정도의 전개 같은 부분들은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첫 번째 극장판' 다운 분위기 구현을 해내었다. 빌런들도 역대급으로 존재감이 약하지만 '짱구로서의 본질'은 신비롭고 재미있게 지켜냈으며, 아무 근심 없이 웃을 수 있던 장면들도 갖추어져 있어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너무 많이 봤는지라 결함들이 쉽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친한 친구에게 유독 미울 때가 있는 것처럼. “내가 진 걸 인정하지...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이 영화의 명장면] 1. 가짜 액션가면 이 장면은 이상하게 계속 생각나고 좋다. 텔레비전을 껐을 때 나온 그레그레마왕부터, 그 모습에 호들갑 떠는 짱구와 아무렇지 않게 늘 그렇듯 넘기는 봉미선, 그리고 아무도 몰라주는 자신의 마음을 흰둥이에게 나지막이 건네는 짱구 뒤로 지는 아름다운 노을까지. 나는 짱구를 보며 굉장히 많은 시간의 유년시절을 보냈었다. 그런 장면들이 모이고 모여, 이렇게 극장판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괜히 먹먹하고 울컥했던 장면. 먼저 뛰어가던 흰둥이를 숨이 차오를 때까지 쫓아갔던 짱구는 현재 내 배경화면이기도 하다. “분명 티비에 이상한 게 나왔어. 액션가면도 가짜였고 말이야. 흰둥아, 넌 내 말 믿지?” 2. 구멍가게 한 번도 걸어가본 적 없는 골목길, 문득 뭔가에 홀려 들어간 그곳엔 처음 보는 구멍가게가 있다. 이것은 마법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럴 때가 있다.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짱구에겐 더욱 그렇다.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그곳에서 신중히 고른 초코비에서 나온 99번 액션가면 카드도, 초코비 하나 더 주는 줄 알았던 봉미선도,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액션가면도, 이상한 건, 이런 부분들을 '억지스러운 연출'로 보려는 우리의 시각이 아닐까. 아직 다섯 살 어린아이임을 증명하는 것 같은 짱구의 질문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한테도 나처럼 어렸을 때가 있었어요? 엄마 어렸을 땐 난 어디 있었어요?“ 3. 액션가면 인형 피곤한 하루를 보내는 이에게 있어 '누군가와 함께 떠난다'는 건 지독히 싫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니까. 하루 정도는 집에서 편안히 쉬고 싶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선풍기 바람을 쐬고 싶고, '뭔가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지만 짱구 가족 구성원 모두는 갑자기 바다를 가자는 신형만의 제안을 냅다 받아들인다. '가족끼리 바다를 가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치유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게 느껴졌던 장면. 극심한 교통체증 앞에서도 짱구의 액션빔을 맞아주는 신형만의 마음이, 아마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후 홧김에 경로를 틀어 울퉁불퉁한 지름길 위를 달리는데, 저 멀리 액션가면 인형이 보인다. 이 장면도 굉장히 신비로웠다. “여러분은 이미 입장권을 갖고 계십니다.” 내 인생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바로 어렸을 적 짱구를 푹 빠져 봤다는 것이다 영화를 고르는 데 있어서 까다로웠던 나도 이 작품을 고르기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고마운 극장판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