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조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평균 3.5
언니에게 목을 세게 물릴 때마다 상상한다. 좀비가 된 언니에게 기꺼이 물리는 선택을 한 나를. 한 입을 뜯기고 나면 언니를 밀치고 제압해(이 부분은 도통 자신이 없어 보완이 필요하지만) 서로의 손을 깍지 껴 단단히 묶을 것이다. 그 사이 수없이 몸 곳곳을 뜯어 먹히겠지만 현재는 불행, 그때는 다행히 언니는 치아 교합 문제로 앞니로 뭔갈 잘 못 베어 물고, 나는 평소에 언니에게 좀 더 세게 깨물길 요청하는 취향이니까. 침대나 소파에서 안고 뒹굴며 몸 어딘가는 꼭 붙인 채 언니와 골몰하는 것은 ‘어떻게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까’다. Mbti 슈퍼 N인 우리는 언제나 ‘만약에- 놀이’에 진심으로 임한다. 덕분에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된 놀이는 밤새도록, 잠들기 직전까지 이어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이 상수인 제법 견고하고 창의적인 방식들을 여럿 고안했다. 1. 만약에 우리 중 하나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집의 흰 테이블에 ㅂ 모양으로 똥을 싼 채 일단 몸을 숨긴다. 상대가 그것을 발견하고 침착하게 벌레가 된 연인을 부르면 위협적이지 않게 ‘절대 날지 않고’ 천천히 등장한다. 참고로 우리는 벌레를 매우 두려워하며, 이후 소통법은 길기에 생략한다. 2. 만약에 남자 몸을 전혀 욕망하지 않는 언니와 남자를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게 불가능한 내가 둘 다 남자가 된다면? 별 탈 없이 끝내주는 레즈 커플에서 환상적인 게이 커플이 되는 것일 뿐이다. 3. 만약에 우리가 근친관계로 태어나 만났다면? 이조차 우리 사랑을 막을 수 없는데 배덕 요소가 과한 관계로 자세한 계획은 비밀이다. 내가 새가 된다면? 지렁이가 된다면? 온갖 동물과 날벌레가 되어도 언니는 나와 같이 새가, 지렁이가, 그 무엇이든 된다고 해주었다. 만약에라는 말로 갖가지 존재로 태어난 모든 차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틈틈이 꺼내와 개선하곤 했다. 그런데 있잖아 언니. 사실 뱀파이어나 좀비 같은 건 어려웠어. 어릴 때부터 죽음을 바라던 내게 너무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거든. 불멸의 존재가 무엇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세상 모든 존재를 다 물어 뜯고선 나를 가장 미워하게 될 거다. 언니를 만나고도 여전히 죽음을 품던 나 때문일까. 온갖 괴상한 만약의 상황 속에서 필연적인 죽음만큼은 한 번도 가정하지 않는 언니를 보면서 배신자가 된 기분은 몰래 혀 밑에 넣었다. 산 채로 썩어가는 ‘게’ 된 거 같다, 죽지도 못하고. 생각도 기억도 희미한 채 스무 시간씩 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구역질하고 잠만 자던 날들이 있었다. 어떻게 살지 보다는 어떻게 죽을지만 생각하던 때. 그래, 꼭 식욕 없는 좀비 같을 때. 내 유서의 부고 연락처에 언니는 없었다. 그때의 나는 언니를 장례식에 반드시 부를 아주 친한 친구는 아니라 생각했다. 우리의 첫 만남, 전시장에서 내 작품을 보던 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서로에게 한눈에 반했단 걸 친구로 7년을 지내고 알게 되었다. 지나간 웃긴 일이라는 듯 함께 얘기했지만 그날로부터 겨우 사흘을 친구로 버티고 결국엔 연인이 되었다. 둘 다 지금껏 상대와 스스로를 깊이 속여야 할 만큼 7년 동안 마음이 조금도 닳지 않았기 때문에. 평생을 이성애자로 살며 남자친구까지 있는 주제에 첫눈에 반한 여자와 아주 친한 친구가 되는 건 내게 불가한 일이었던 것이다. 카카오톡 숨김 친구 목록에서 언니의 프사만 훔쳐보던, 내 죽음을 알릴 예의를 갖추기도 면구스러운 사이. 나는 언니로 인해 사랑에 성별이 중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 ‘앎’은 내 삶에 흔치 않게 너무나 명징한 정언이기에 언니가 바퀴벌레나 남자, 친족이 되는 수많은 ’만약에‘들은 유연하게 모양을 바꾸며 확정적 사랑이 된다. 이때만큼은 나도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이란 이름이 필요 없는 장풍이처럼 생각한다. 구분 짓지 않으면 자유자재로 변하고 속하고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이 늙지 않은 채로 지구를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만 같다. 만약에 놀이에서 내가 좀비가 된다면 언니는 반드시 나에게 물려 함께 좀비가 될 거라 했다. 이 책의 그녀도 변해 아내가 속한 곳으로 갔다. 혀 밑에 숨겨둔 배신을 입안에서 굴려본다. 희구하던 영원한 안식을 언니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지. 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여자 앞에서 삶의 의미나 존엄을 따지며 비겁하게 죽음을 꼴딱 삼키는 건 얼마나 졸렬한 일인가. 작가가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듯 어쩌면 나 역시 살고자 한 적이 없기에 어디든 더욱 함께 있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그녀들처럼 함께 손잡고 다니는 특별한 좀비 부부가 될 것이다. 인류 모두가 하객이 되어 영원히 계속되는 종말의 피로연. 좀비가 되고도 여전히 체력 없는 나를 한 손에 매달고 다니느라 언니는 사냥보단 대체로 주워 먹어야 할 테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먹고 만 우리는 다른 얼굴이 아닌 서로의 얼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