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agleeye17

하얀 리본
평균 3.8
우리가 선이라 믿는 것은, 때로 우리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 .... 2시간 동안 넋 놓고 보다가 마지막 20분에 뒤통수를 맞았다. 그것도 엄청 세게 맞았다. 크레딧까지 다 올라간 후에는 앞의 2시간이 전하는 고요한 충격까지 깨닫게 되었다. .... (스포주의)영화 속 부모 세대들은 엄격한 위계 질서 하에 자식 세대들을 주입식으로 교육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선은 '하얀 리본'으로 상징되는 순수이다. 여기서 순수는 단순 욕구, 폭력, 성적 욕망 등을 통제한다는 미명 하에 부모 세대가 설파하는 '외부적인 상징으로서의 선'이다. 즉, 무엇이 선인지 인지하고 있는 상태지만, 막상 그것을 실천하고 있지는 않은, 완전히 내면화되지 않은 제3의 존재이다. 목사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강압적으로 그들의 욕구를 통제한다. 의사는 옆집 과부와 불건전한 관계를 지속하고 딸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소작농은 계급 질서의 모순에 불만을 품는 아들을 때린다. .... 이처럼 알고 보면 도덕적으로 타락한 부모 세대에 의해 자식 세대는 선을 '내부적 자각'이 아닌 '외부적 강압'으로 인식한다. 스스로 동물적 본능을 통제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그 동물적 본능을 표출한다. 강가에서 피리 부는 소녀를 밀쳐버린 소년의 모습이 대표적이며, 더욱더 확고하게 결말을 통해 다시 한 번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영화상 시간적 배경으로) 1913년을 살고 있었던 아이들은, 어긋난 선에 길들여진 상태로 어른이 되어, 나치당과 히틀러의 지지자들이 된다. .... 시대적 배경을 통해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파시즘의 탄생과 계승'이다. 허울뿐인 강압적 도덕이 불러오는 부작용의 결과가 바로 파시즘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하네케는 국가 같은 큰 공간적 배경을 택하는 것이 아닌, 상징으로 가득 찬 독일 시골 마을이라는 작은 공간적 배경을 택한다. 그리고 노골적인 폭력적, 성적 묘사를 자제하며 핵심적인 메시지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여러 상징물들과 카메라 구도들은 영화적 미학을 더한다. .... 하네케는 인간의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 항상 '소소하고 목적이 불분명하며 괴상하기 짝이 없는' 시발점들을 자신의 영화 속에 던진다. 전작 <퍼니게임>에서는 난데없이 두 싸이코패스가 평범한 식구의 집에 침입하고, <히든>에서는 자신들의 단순한 일상을 찍은 비디오 테이프가 중년 부부에게 던져진다. 조용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자, 이들은 극도의 불안과 함께 일상의 파탄을 경험한다. <하얀 리본>은 그 절정이다. 마을을 연속적으로 뒤흔드는 괴이한 사건들의 행렬은, 가식적인 선으로 위장한 부모 세대 인물들의 실상을 고발한다. 고발의 범위를 따지자면, 개인 혹은 현대인이라는 개체에 머문 전작과 달리 사회에 집중했단 점에서 이 작품이 더 광대하지만, 오히려 감정의 표출은 이 영화가 가장 절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네케의 마스터피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 의미를 곱씹을수록 깊어지는, 우리 시대의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