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율리

작은 영웅 - 게와 달걀과 투명인간 -
평균 2.8
이제 더 이상 스튜디오 포녹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발자국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메리와 마녀의 꽃>을 만든 스튜디오 포녹의 단편집. 순서는 <카니니와 카니노>, <사무라이 달걀>, <투명인간> 순. 1. 카니니와 카니노 민물게 남매 카니니와 카니노가 아빠를 찾아 떠나는 작은 모험 이야기.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작. 세 감독 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향을 제일 크게 받았으며 작화나 색감도 모두가 떠올리는 '지브리'에 가장 가까운 감독이다. 요네바야시 감독은 물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스튜디오 지브리에 있을 때부터 그가 감독을 맡은 작품에서는 물이 나오는 씬이 꽤나 중요하고 자세하게 연출된다. 이번 작품에서는 물을 지브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극사실주의'로 표현했다. 시냇물의 흐름을 볼 때마다 눈을 의심할 정도의 정교함이 느껴졌다. 스토리는 역시나 아쉽다. 이렇다 할 대사가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서사성이 부족하다. 몰입감이 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2. 사무라이 달걀 달걀을 먹으면 아나필락시 쇼크를 일으키는 남자아이 슌의 이야기. 모모세 요시유키 감독 작. 모모세 감독은 스튜디오 지브리 시절부터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에 다수 참여해 왔다. 작풍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보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스타일이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주인공 슌이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장면 연출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카구야 공주 이야기>에서 카구야 공주가 충격에 휩싸여 정신없이 도망치는 씬과 흡사하다. 내용 면에 있어서도 타카하타 감독이 추구하는 '일상'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이의 모습과 행동을 세세하게 관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투명인간 이름도 모습도 존재감도 없는 투명인간 이야기. 야마시타 아키히코 감독 작. 야마시타 감독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 <게드전기>, <벼랑 위의 포뇨> 등에 참여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스튜디오 포녹을 이끌어갔으면 하는 감독이다. 앞서 언급한 두 감독과는 달리 스튜디오 지브리의 양대 산맥 미야자키 감독과 타카하타 감독 그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작풍.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면이 강했지만 세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성. 대중들에게 인지도는 가장 낮을 지 모르지만 스튜디오 지브리를 답습하지 않는 '포스트 지브리'를 이끌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커졌다. 단편집을 전체적으로 통틀어 느낀 점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그늘에서 스튜디오 포녹을 해방시켜 줄 때가 왔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포녹의 첫 작품이자 첫 장편 애니메이션 <메리와 마녀의 꽃>이 개봉됐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스튜디오 지브리를 잃은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영화를 관람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으며, 이번 단편집도 전 작품에서 못다채운 '지브리뽕'을 채우기 위해 본 감이 없지않아 있다. 하지만 세 작품을 본 뒤, 이제는 스튜디오 포녹이 '포스트 지브리'가 되길 바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튜디오 포녹의 주축을 이루는 세 감독은 분명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각 단편이 끝날때마다 스튜디오 지브리와 같은 'おわり' 싸인을 내걸었고,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는 엔딩 크레딧을 봤을 때는 울컥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작품에 있어서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를 인정받기 위해 내놓은 단편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존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의 클리셰를 깨부수는 연출과 작화가 반드시 하나씩은 들어있었다. <메리와 마녀의 꽃>을 본 뒤에는 스튜디오 포녹이 어떻게 지브리를 계승해 갈 것인지가 궁금했지만 <작은 영웅> 단편집을 본 뒤에는 스튜디오 포녹이 어떻게 지브리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기대의 방향은 정반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스튜디오 포녹의 행보에 기대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