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환
4.0

말레나
영화 ・ 2000
평균 3.5
아름다움이 죄가 되는 사회. 단순히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남성들은 저렴한 욕망을 해소하려 하고, 여성들은 예리한 질투를 들이댄다. 모두가 가해자인 세계에서 외톨이 피해자만이 그 모든 굴레를 뒤집어 쓰고 희생된다. 도덕도, 이성도 사라진 암흑시대에서 결국 고통받는 것은 연약한 개인일 뿐. 따스한 지중해의 햇빛조차 그녀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녀의 이름은 말레나다.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는 영화지만,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무궁무진한 영화다. 날 것 그대로의 이탈리아 풍경이 잔뜩 담겨있는 부분도 인상적이고, 모니카 벨루치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켜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포인트다. 고전적인 해석처럼 유일한 관찰자인 '소년'의 시선으로 흔들리는 순수성을 읽을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떻게 닫힌 사회에서 여성이 파괴되는지를 지켜보는 방법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을 꽉 움켜쥔 파시즘의 본질을 엿볼 수도 있고, 한낱 비열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바라볼 수도 있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 만 개의 비평이 나올 법하다. 그 점에서라도 충분히 좋은 영화다. 생존을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한 말레나가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광장에 앉자 수 명의 남성들이 담배불을 붙여주는 장면이 <말레나>의 가장 유명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엔딩에 있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다시 지옥과도 같았던 마을로 돌아온 말레나.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시장에 들려 장을 본다. 그녀를 가장 혹독하게 몰아냈던 부인들은 그녀 뒤에서 흉을 본다. 이제 주름도 생겼구만, 살도 많이 붙었고. 그리고는 방긋 웃으며 말을 던진다. 본 조르노! 더 이상 자신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그녀가 추락하자 그들은 한없이 저열한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말레나는 그런 인사에 어쩔 수 없이 대꾸하고 만다. 본 조르노. 구슬픈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