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권준희

권준희

5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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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책 ・ 2003

평균 3.9

긴긴 복도를 걷고 있다. 문을 열어 떠나 보낸 첫 번째 방에는 작은 새와 루씨아노가 있었다. 다음 방에는 아직도 글로리아 누나가 있다. 세 번째 방의 주인은 아리아발도 아저씨였는데, 늘 여행을 다니던 그는 언젠가부터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문에는 내 머리통보다도 더 큰 자물쇠가 걸려있다. 나는 이 방의 주인이 기적 소리와 함께 사라진 후에 문을 열 수도, 누군가에게 방을 내줄 수도 없었다. 그저 꼭꼭 걸어 잠가두고 그와 그때를 그리워도 했다가, 머릿속에서 잠시 제쳐놓기도 했다가 그렇게 지낼 뿐이다. 그다음 방에는 시들지 않는 하얀 꽃 한 송이가 방을 지키고 있다. 꽃을 선물한 주인은 내가 방을 나오면서 사라졌다. 나는 애써 그 꽃을 보러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다음부터는 방의 주인이 없다. 누군가 들어와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가 괴로움이나 그리움 따위를 남기고 떠나갔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죽을 듯 아픈 일은 생기지 않았다. 외로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