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하나의 씬이 전환될 때마다, 혹은 단일한 숏 내에서 이루어지는 주도권의 역전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 (스포일러) 영화가 시작하면 백군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는 홍군의 병사들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오프닝씬이 무색해지게 다음 씬으로 넘어가면 홍군병들이 백군 포로들을 붙잡은 채 그들을 풀어주고 있는 상황이 제시된다. 그런데 곧이어 또다시 상황이 역전된다. 백군병사들의 침입이 의심되어 수색을 하던 홍군병사 한명은 수색을 하던 도중에 이미 백군병사들이 이곳을 장악했음을 직감하고 탈의를 한 뒤 곧바로 투신한다. 이 모든 반전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고정된 상태로 뒤에서 멀찌감치 서서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즉 홍군 병사가 백군을 수색하다 도리어 백군에게 진압되고 마는 이 에피소드는 하나의 숏 내에서 이뤄진다. 이처럼 <적과 백>에선 하나의 씬에서 그 다음 씬으로 넘어갈 때마다 상황의 주도권을 쥔 주체가 달라지고, 더 나아가 단일한 숏 내에서 마저도 상황의 주도권이 수시로 역전되는 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이후의 영화가 작동되는 논리도 이와 유사하다. (초반에 등장하는)헝가리인이라는 이유로 운 좋게 풀려난 중년의 홍군병사 한명은 씬이 전환되면 반대로 헝가리인이라 러시아어를 해석하지 못해 죽을 상황에 놓이게 되고, 결국에 아이러니한 죽음을 맞이한다. 백군의 소위 역시 농가를 점령해 홍군 병사들을 막무가내로 죽이고 마을의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추태를 부리며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과시하던 것이 무색하게 곧이어 도착한 자신의 상사에 의해 허무히 처단된다. 영화의 시작부와 마찬가지로 헝가리 남성은 씬의 전환마다 운명이 달라지고 백군 소위는 롱테이크의 단일한 숏 내에서 지위가 역전되어 사망한다. . <적과 백>은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당국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들어진 헝가리-러시아 합작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주체였던 홍군을 마냥 찬양하는 태도로 일관하지 않는다. 일례로 후에 홍군 병사들이 패잔병들이 위치한 병원을 마침내 접수했을 때의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이때의 상황 역시 앞서 언급한 영화의 방법론과 동일한 층위에 놓여있다. 백군이 병원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군의 장교가 멀리서 뛰어오는 말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도중 그의 목으로 홍군의 총알이 날아온다. 카메라가 우로 패닝하고 나면 다시 한 번 주도권은 바뀌어있고 이제 병원은 홍군의 차지다. . 우리는 앞서 병원을 접수하고 있었던 백군들의 잔인함을 확인한 바가 있다. 이 영화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임으로 이제 홍군이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우리는 백군과 반대되는 그들의 정의로운 면모를 확인할 차례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기대를 철저히 배신한다. 주도권을 쥐게 된 홍군 병사들에게서 혁명의 투사다운 면모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을 도와줬던 간호사들이 백군의 명령을 따라 홍군 색출을 도와줬었다는 이유로 그들 중 몇 명을 사살하고,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대장은 앞서 백군의 대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곳에 있는 여성을 성적으로 추행한다. 혁명군의 의로움이 등장해야할 타이밍에 우리에게 보이는 건 앞서 확인했던 반대 세력의 지저분한 행실과 유사한 추태다. . 결국 이처럼 하나의 씬에서 다음 씬으로, 혹은 단일 숏 내에서 관찰되는 일련의 주도권 변화가 시사하는 것은 백군으로 대변되는 악의 무리에서 홍군으로 대변되는 정의로운 혁명군으로의 전환이 아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의도적인 부분인데, 영화는 흑백의 형식을 택함으로서 홍군=선, 백군=악 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나있다. 결국 우리가 영화 내내 보게 되는 것은 적과 백이라는 경계가 무화된 흑백의 영상 속에서 마치 진자운동을 하듯 오고감을 반복하는 살상의 주도권 그 자체인 셈이다. 시종 좌우로 패닝하며 인물들의 급변하는 상황을 하나의 숏에 담아내던 카메라의 롱테이크는 황량한 정서를 전달해 줄 뿐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당대 내전에 내포돼있던 허무한 부조리의 시각화이자 영화 전체를 관장하는 방법론의 축약이다. 그 부조리의 끝자락에서 한 인물이 칼을 든 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누군가에게 예를 갖춘다. 짐작컨대 이는 한 홍군 병사가 홍군에 바치는 예우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허망한 죽음의 운동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 밖 이들에게 보내는 영화의 추모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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