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BJ

화녀 '82
평균 3.5
김기영의 '하녀' 집착의 일환인 '화녀 '82'는 '하녀'의 기본적 이야기를 다 따라간다. 일부 대사들도 같기도 하며, 음악을 하는 가장, 말썽꾸러기 아들 같은 익숙한 캐릭터 구성이 있으나, 삼각관계의 축들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녀'는 하녀를 팜므파탈 같은 영민하고 무서운 존재로 그리며, 그녀의 유혹에 잠시 넘어간 남편과 그의 가족에 더 호의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화녀'는 남편과 하녀의 관계보단 아내와 하녀의 관계에 좀 더 집중을 한다. 이 영화는 여성들에 훨씬 동정심을 준다. 하녀는 본인의 유혹이 아닌 남편의 강간으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됐고, 아내는 평생 남편을 위해 내조를 하며 닭 농장을 운영했으나 남편과 하녀의 관계로 인해 끔찍한 일들을 계속 겪게 된다. '하녀'의 하녀는 들어올 때부터 작정하고 유혹하기 위해 들어온 빌런에 가까운 존재라면, '화녀'는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남자로 인해 고통을 받는 두 여자를 피해자로 그리고 있다. '화녀'의 하녀 명자는 임신 후에 아이를 잃은 충격에 더해고, 자신을 임신시킨 자에게 마치 지조를 지키는 듯한 우직한 면모를 바탕으로 하여 '하녀'의 광기에 빠진다. 아내 정순은 '하녀'의 아내와 달리 명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명자를 아래 계층으로 생각하고 깔보는 태도가 있으나, 동시에 그녀를 교양있는 여인으로 키우고 싶어하며 따뜻하게 대해준다. 이런 관계로 시작하며 영화는 하녀 명자를 가족의 일원으로 사실상 편입시켰기에, 이 가족이 스테인글라스 가구들처럼 산산조각 난 것은 '하녀'처럼 어떤 외부인의 침범이 아닌, 남편이란 자의 악행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닭이라는 존재도 참 특이하다. 수많은 닭들이 일렬로 모이를 쪼는 광경이 다소 오싹하기도 하며, 닭의 자식이라고 볼 수 있는 계란을 마시는 두 여인의 행위는 서로의 자식을 죽이는 이야기의 복선처럼 보인다. 거기에 닭 농장의 도우미였던 남자를 추가하며, 명자와 정순의 관계 변화를 추가적으로 꾀하며, 살기와 불안으로 가득찬 심리적 환경을 조성한다. 그 외에 김기영의 아름다운 시각적 디자인은 여전히 일품이다. 한 장소에서 이야기의 대부분을 전개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집의 디자인과 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연출력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