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후로 뭔가가 사라졌어요. 성공하고 싶은 마음, 뭐 그런 것들이요. 사람들한테는 고시 공부중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 해요. 청년이 말했다. 나는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거라고. 딸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얼음땡 놀이를 하는데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혼자 얼음이 되었다고. 그후로 나는 딸과 얼음땡 놀이를 자주 했다. 아침에 딸을 깨울 때도 그랬다. 딸이 얼음이라고 외치면 내가 땡 하고 말하며 딸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내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적이 있었거든요. 나는 청년에게 말했다. 그때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얼음 하고 외쳐. 그래서 나는 얼음 하고 말했다. 삼십 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딸은 땡을 외쳐주지 않았다. 딸이 땡을 해주길 기다리면서 나는 종일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었고 그제서야 딸이 내 손을 잡으면서 땡 하고 말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 가끔 얼음이 되어야겠다고. 나는 청년에게 지금은 술래를 피해 얼음이 된 거라고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곧 누군가 땡 하고 외쳐줄 거라고. 얼음땡 놀이란 그런 거라고. 누군가 땡 하고 말해줘야 집에 갈 수 있는 거라고. 그러자 청년이 웃었다. 흐흐흐, 그렇게 웃었다.
윤성희, 「어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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