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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평균 4.1
"저는 멘토가 될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꽤 많은 것들이 여러분 뜻대로 안 될 겁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겠죠. 아무리 조심을 해도 분명히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될 거에요. 그 난관을, 여러분은 지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할 것이고, 마침내 돌파할 거에요.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니까. 그리고 훗날 회한과 함께 돌아볼 때가 올텐데, 바로 그때, 뭔가를 배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달라질 거에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피 흘릴 필요가 없는 배움은, 이 배움 덕분에 내가 달라졌다고 믿게 할 뿐, 나를 실제로 바꾸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읽고 써도 피는 흐르지 않는다.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반복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믿을 수밖에. 지금의 나는 10년전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다. 10년 후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믿음조차 없으면 가망 없을 것이다. 문학은 그 믿음의 지원군이다. 피 흘리지 않으면 진정으로 바뀌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피 흘리지 않고 인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을 나대로 시도해보았으나 결과는 이렇게 변변찮다. 수없이 다시 물어야 하리라. -176~177p 오늘날의 매체 환경 속에서 실명이 노출된 유명인과 익명의 보호를 받는 네티즌 중에서 누가 더 강자인가. 유명인이라서 감수해야 할 고통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가학을 합리화하는 궤변이다.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216, 217p '나는 사랑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너를 살게 함으로써 나 역시 살 가치가 있게 되기 위해서.' 신이 있다면 그가 우리를 사랑하겠지만, 신이 없다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자 위대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사랑에 관한 한, 언제나 이렇게 말할 수밖에요. 곁에 있어줄게. 우리가 온전해지기 위해서. -3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