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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적 구조와 생물학적 DNA의 혼합체인 인간은 증거하는 몸으로써 인간을 한데 모이게 하는 공감과 동일시의 경험을 가진다. 이는 배려의 실천과 연약함의 경험을 향한 무언의 항변이다." 2019년 3월 세상을 떠난 바바라 해머의 유작 <증거하는 몸>은 알몸으로 출연한 바바라 해머의 퍼포먼스와 함께 DNA 이미지나 X-ray를 통해 촬영한 여성의 신체, 분해되어 가는 필름 이미지 등을 보여준다. 영화는 2019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열린 추모전을 통해 바바라 해머의 단편 5편과 함께 상영되었다. 함께 상영된 단편들은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와 여성의 몸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여성의 몸으로 구성된 <클린즈드II>(1969)로 시작하여, 연대하고 파티를 벌이고 사랑하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몸(<자매들!>(1973), <레즈비언 사랑의 기술>(1974))을 지나, 강인함, 나이듦과 같은 여성 신체의 모습과 변화를 담은 작품들(<내가 사랑하는 여인들>(1976), <이중 강도>(1978), <증거하는 몸>)으로 이어진다. 이 단편들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바바라 해머의 사유를 보여준다. 특히 <이중 강도>와 <증거하는 몸>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여성의 몸을 이중노출을 통해 겹쳐 보여주는 장면은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중 강도>는 알몸으로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여성의 몸을 이중 노출을 통해 겹쳐서 보여준다. 마치 그림자가 겹치듯 겹쳐지는 한 여성의 다른 두 몸은 다양한 정체성으로 분열되고 그것이 신체를 경유하며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증거하는 몸>에서 바바라 해머의 노쇠한 몸으로 다시 재현되는 '겹치는 몸'은 해체(죽음)을 앞둔 그의 몸 위에 곰팡이, 이끼, 세포 등의 이미지를 투사한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바바라 해머의 사유는 신체, 삶, 정체성 등 모든 것이 해체되고 분해되는 죽음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이동한다. 이는 <질산염 키스>(1992)나 <역사 수업>(2000) 등 바바라 해머의 대표작에서 드러난 '추상의 정치학'은 그의 유작인 <증거하는 몸>에서도 이어진다. 사실 이 영화는 극장 상영용이 아니라 3채널 영상설치작품으로 제작되었다. 때문에 영화제 상영 당시 3채널 스크린에 펼쳐졌여야 할 이미지가 극장 스크린에 가로로 길게 영사되었다. 이 지점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작품을 온전한 형식으로 관람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바바라 해머의 전시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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