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백치 애인이 있다.
그 바보의 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를, 그리워 하는지를 그는 모른다.
별볼일 없이 우연히,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나게 될까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 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 찻집에서 찻집 문이 열릴 때마다 불길 같은 애수의
눈을 쏟고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길거리에서 백화점에서 또는 버스속에서 시장에서,
행여 어떤 곳에도 네가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긴장된 얼굴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안타까움을 그는 모른다.
밤이면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며,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며,
내게 한마디 말도 해오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이다.
바보 애인아.
너는 나를 떠난 그 어디에서나 총명하고 과감하면서
내게 와서 너는 백치가 되고 바보가 되는가.
그러나 나는 백치인 너를 사랑하며 바보인 너를 좋아한다.
우리가 불로 만나 타오를 수 없고,
물로 만나 합쳐 흐를 수 없을때,
너는 차라리 백치임이 다행이였을을 것이다.
너는 그것을 알 것이다.
바보 애인아.
너는 그 허허로운 결과를 알고 먼저 네 마음을 돌처럼 굳혔는가.
그 돌 같은 침묵속으로 네 감정을 가두어 두면서
스스로 너는 백치가 되어서 사랑을 영원하게 하는가.
바보 애인아.
세상은 날로 적막하여 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큰 과업처럼 야단스럽고 또한 그처럼도 못하는 자는
절로 바보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래, 바보가 되자.
바보인 너를 내가 사랑하고 백치인 네 영혼에 나를 묻으리라.
바보 애인아. 거듭 부르는 나의 백치 애인아.
잠에 빠지고 그 마지막 순간에 너를 부르며 잠에서 깬
그 첫 여명의 밝음을 비벼집고 너의 환상을 쫓는 것을
너는 모른다.
너는 너무 모른다.
정말이지 너는 바보 백치인가.
그래 백치이다.
우리는 바보가 되자.
이세상에서 아주 제일가는 바보가 되어서 모르는 척하며 살자.
기억 속의 사람은 되지 말며 잊혀진 사람도 되지 말며
이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자.
우리가 언제 악수를 나누었으며
우리가 언제 마주 앉아 차를 마셨던가.
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딪고 지나가는 아무 상관없는 행인처럼
그렇게 모른 척 살아가는 거다.
바보 애인아.
아무 상관없는 그런 관계에선
우리에게 결코 이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나의 애인이다.
백치 애인이다.
아, 영원한 나의 애인.
- 신달자 수필집 <다시 부는 바람(1979. 女苑文化社)>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