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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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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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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향 소다수

영화 ・ 1977

평균 3.5

알랭 레네의 걸작 <뮤리엘>보다 멋있는 스티브 맥퀸이 나오는 <대탈주>에 더욱 시선을 빼앗기는, 케네디의 암살 소식이 들려오는 혼란스러운 사회이지만 아직 엄마의 생일 파티를 어떻게 꾸밀지가 더욱 고민되는 그런 나이. 1962년 샤론 지하철역 참사의 사태를 직접 겪은 학생의 입에서 생생한 비극의 실재가 들려오지만, 그런 이야기는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에 이내 묻힌다. 십 대는 그럴 나이다. 사회보다 개인에, 배움보다 사랑에 관심을 쏟을 그런 나이. 허무하게 깨져버린 첫사랑이라는 환상과 언니의 친구가 실종된 심각한 상황에서도 장난을 칠 계획을 세우는, 철없는 청소년기의 방황 또는 혼란. <박하향 소다수>는 ㅡ마치 선생님처럼ㅡ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아직 어린 시기를 거치고 있는 소녀들의 순수한 모습, 그러나 점점 순응과 현실을 배워가는,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감독의 애틋한 시선이다. 배움은 주입으로부터 입력되지 않는다. 성숙해진 자신만큼 더욱 성숙한 남자를 만나야만 한다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개입해야지만 깨어있는 시민이 될 수 있다는 소녀의 착각, 그런 착각들은 쌓이고 쌓여 배움이 된다. 방과 후에 친구들과 카페에 놀러 가고, 타이츠를 입고, 에세이 점수 0점을 맞고, 우수 학생 선정에서 제외되면 다 불량 학생인가. 그 나이대에 품을 수 있는 호기심, 욕망, 반항의 심리가 비록 지금 당장의 고난을 빚어낼지라도 끝내 그 고난 또한 경험의 일부가 되어주지 않는가. 결국 배움은 경험에서 발견되며, 그 경험은 삶에서 파생된다. 두 자매는 한 학기의 학교생활을 통해 그 누구 부럽지 않은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으며, 두 번째 해변으로의 바캉스에서는 조금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초반에 펼쳐지는 70년대의 학교 풍경이 흥미로웠다. 물론 시대적 배경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영화가 그들의 행위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님), 교육 현장이라는 명목하에 어린 학생들을 착취하는 등 권력을 쥐고 남용하는 몇몇 선생님들의 모습은 한국과 별다를 바가 없는 닮은 꼴의 시대 상이었구나 싶었다. 오히려 학생들끼리의 갈등보다 선생님들 사이의 수직적인 계급이 더욱 돋보였다. 교장 선생님을 필두로 학교의 유일한 남성인 수위,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문학 선생님, 학생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미술 선생님, 운동을 못하는 체육 선생님, 학생들에게 도리어 괴롭힘을 당하는 수학 선생님까지. 미술 선생님을 보며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으면서도, 막상 수학 선생님을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자기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청소년의 심리를 통제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드센 압박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어딜 가나 적당한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폭력과 타이름 사이의 타협안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