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BJ

파이브 피트
평균 3.7
'파이브 피트'는 '안녕, 헤이즐'처럼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두 10대의 사랑을 그린 청춘 멜로 영화다.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무서운 질병의 특성을 굉장히 잘 사용하여, 운명적으로 사랑을 할 수가 없는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가슴시린 러브 스토리를 짜고, 이에 밀레니얼 청춘 영화의 색채를 덮인 시도는 좋았던 영화였으나, 결국엔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신파적 요소들이 망친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시놉시스만 보면 좀 심드렁해지긴 한다. 죽음의 경계에 있는 두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면 과정과 결말은 뻔하지 않는가. 게다가 신파로 흘러가기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다 (이 영화는 결국 그쪽으로 가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후반부에 많이 터져나오고, 그 전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였다. 이는 캐릭터들과 배우들과 이야기의 설정이 모두 잘 합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사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이 둘의 질병이다. 그리고 영화는 모든 씬마다 이 질병이 만들어낸 감옥에 이 두 주인공이 같혀있다는 점, 그리고 이 질병의 위험성을 계속 상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이 꾸준히 위험에 처해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일종의 금지된 사랑을 하게 되는 두 주인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여기에 이제는 멜로 영화의 클리셰가 되버린 게이 베프 캐릭터와 의료 영화의 스테레오타입인 엄마 같은 간호사 캐릭터가 모두 맛깔나고 든든한 조연 역할도 해준다. 결과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위험한 상황,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캐릭터들과 그 상황을 계속 상기시키며 기존의 멜로 공식을 전개하는 이야기의 합이 굉장히 잘 맞아떨어지며 익숙한 듯하면서도 신선한 청춘 멜로 영화가 나온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약간 극과 극인 것 같다. 우선 조연들 중에서는 모이세스 아리아스와 킴벌리 허버트 그레고리가 제일 인상적이었으며, 정말 이 영화의 조미료 같은 존재들이었다. 우선 두 주연에 대해서 칭찬할 점으로는 케미가 있다. 이 둘의 첫 만남부터 썸과 연인으로까지의 발전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그리는 와중에 두 배우의 조합도 너무 사랑스럽고 애틋해보여서 보기 좋았다. 하지만 개개인의 연기로는 조금 갈리는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인 콜 스프로즈는 다소 쿨한 캐릭터임은 이해하지만, 대사들을 너무 건조하게 처리하는 순간들도 너무 많았다. 이 배우의 단독 연기는 모두 별로였으나, 상대역과의 호흡은 상당히 좋긴 했다. 반면에 여자 주인공인 헤일리 루 리차드슨에 대해서 나는 '지랄발광 17세'에서 사랑스러운 조연으로 기억에 남고 '콜럼버스'에서 의외의 연기력을 보유한 배우임을 깨닫게 되고, 이 영화에서는 대배우의 원석과도 같은 굉장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에서도 계속 다른 역할들을 맡아서 연기의 유연성에도 놀랐지만, 이 영화에서도 모든 씬을 씹어먹을 정도로 굉장한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감정 연기를 완벽히 해내는 모습에 정말 감탄이 나왔다. 딴건 몰라도 이 영화를 통해 헤일리 루 리차드슨은 진심으로 주목할만한 여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눈웃음 뒤에 상당한 연기력을 보유한 놀라운 재능이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모든 장점은 클라이막스에서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치사하다고 생각하는 전개로 흘러가며, 뜬금없고 공감 안 되는 위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버렸다. 금지된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결말이 궁금해야하는데 결말로 가는 마지막 과정을 망쳐버리니 결말이 안 궁금해지게 되며, 그 결말에 대한 공감도 제대로 안 된다. 꽤 잘 나가던 영화가 막판을 이렇게 망쳐버리니 꽤나 실망적이었다. '파이브 피트'는 헤일리 루 리차드슨을 위해서라도 볼 만한 가치는 있으나, 마지막 20분이 너무나도 치명적이다. 달달하고 풋풋한 10대들의 멜로를 시한부 드라마와 합친 결과는 뻔하기도 하면서도 재미는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결국 영화는 극적 클리셰의 수렁에 빠졌고, 배우들만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들어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