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환

언컷 젬스
평균 3.9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잠재적 가치를 칭송하면서 정작 본인의 삶은 종잡을 수없이 유망(流亡)한 사람이라니. 지옥 같은 삶을 스스로가 초래한 것을 간과한 채 울부짖고, 방법을 찾겠다더니 본능적으로 제자리로 돌아서는 자의 어리석음. 원석으로부터의 삶을 보석으로 바꿀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타인이나 낯선 것이 아닌 오직 나에게로부터 가공되는 삶. . . 귀를 조여오면서도 내면의 심해를 탐구하는 듯한 소리가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데,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고 난해했지만 어느새 신비로워진 그런 느낌. 마치 낯선 것을 향한 우리의 첫인상처럼. 그런데, 그 일면식도 없었던 것과의 첫 교감에서부터 오만 가지 빛이 보이고, 우주가 보이며 마치 나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확신에 가까운 묘한 느낌. 그런 느낌을 원했던 것일까. 대체 어떤 걸 느끼길래, 미지를 향해서 그리도 확신에 차있는 것일까. 낯선 것들을 향한 긍정적인 확신을 바라볼 때에 주위에 둘러싸인 비관적인 시선들은 대게 이렇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허우적대는 인생인데, 타인의 일생과 매겨지지 않은 원석을 향해 모든 것을 걸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올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비유하려 할 때, 아직은 그려지지 않은 백지의 상태보다는 쉽사리 떠올려지지도, 그려지지도 않을 말 그대로 혼돈의 암흑이 더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암흑을 채우는 것은 아무리 투정해봤자 후회나 연민 따위를 미래는 신경도 안 쓸 테고, 그렇게 지나가버릴 거고, 어느새 끝나버릴 허무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 허무함을 막연한 본능에 따라 채우려는 자의 암흑을 보여주는 영화랄까. 본능의 원천이 생존보다도 욕망에 더 자극을 받는 것 같은 하워드는 본인의 미래가 아닌 타인이 가진 원석에 배팅을 한다. the weeknd가 대스타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말도 안 되는 배팅이라는 말에 비웃는 그는 아무리 그 도박이 나의 결정이 시작이라고 해도, 허무함뿐인 암흑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긴다. 우스운 건, 정말로 그가 자신했던 유망들을 향한 안목은 맞은 듯 하지만, 정작 본인은 신중하지 못한 매 순간의 선택들(아마 마치 몸에 배어 있는 습관처럼 본능에 이끌린 결정)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또 자기가 자초한 일임에도 그걸 깨달을 눈치마저 없는 듯 모든 탓을 세상을 향해 돌린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잠재적 가치를 칭송하면서 정작 본인의 삶은 종잡을 수없이 유망(流亡) 한 사람이라니. 지옥 같은 삶을 스스로가 초래한 것을 간과한 채 울부짖으며 방법을 찾겠다면서 본능적으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자. 되는 것 하나 없는 지옥 같은 삶에서 피눈물 흘리면서도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고야 마는 꺼림칙한 한방을 다시 노리는 그를 보면서 느꼈다. 그는 이번 생에는 그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날 수가 없을 거라고. 마치 몸에 배어있는 습관들. 본인의 신세를 탓하면서도 어느새 그 바닥의 향수가 몸에 베어있는, 그리고 그 향수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 어리석음. 그려지지 않던 암흑에서 벗어나기 위했지만, 애초부터 그의 결정들은 모두 타인의 것과 낯선 것들에 걸었기에, 단 한 번도 본인을 향해 걸었던 적이 없었던 그의 미래는 비록 큰 성공일지라도 결코 그려지지도 채워지지도 않을 허무함뿐이다. 아무래도 암흑과도 같은 미래에 받아들일 그 빛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찾아야만 하나보다. 그 낯선 것에 홀려버리는 본능적인 느낌들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원석으로부터 일궈낸 삶을 보석으로 바꿀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본인이 걸어왔던 일을 돌이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모를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미지를 향한 도전과도 같기에, 미답에 대해 걸어가는 것은 좋으나 그 해답은 낯선 것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기대나 본능에 이끌리는 결정보다는, 한 번도 바라본 적 없었던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원석을 들여다보는건 어떨까. 스스로에 대한 탐구와 확신으로 채워나가게 될 그날이 설사 실패한다 한들, 적어도 허무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