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
3.0

제로스 앤 원스
영화 ・ 2021
평균 3.1
김병규 평론가가 올해 베스트로 꼽기도 했고, 글도 흥미로웠던 터라 보게 됐다(아닌 게 아니라, 남들과 달리 자신이 매료된 영화를 구원하듯 변호하는 글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워낙 에이블 페라라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평자라 일반 관객 입장으로선 조금 미심쩍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에단 호크가 텅 빈 밤거리를 걷는 도입부 몇 장면만으로 영화에 사로잡혔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마스크와 방역, 무인의 풍경들,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운드, 제이제이에게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카메라, 거친 트래킹에서 고정 숏, 어둡고 쓸쓸한 밤 거리와 서두르는 걸음에 담긴 기묘한 리듬이 분명 매혹적이었다. 물론 감상은 거기까지고, 글에서 지적하는 것만큼 이미지에 담긴 윤리학을 읽진 못했다. 오히려 지루하게 본 편이다. 다만 화면 속 이미지로 단절된 커뮤니케이션과 폭력적으로 빚어지는 대면들ㅡ섹스에서조차 낭만이 제거되어 있다ㅡ, 음성/양성으로 양분되듯 갈라지는 사상적인 공격들처럼 펜데믹과 엉킨 테러적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이에 절체적 순간, 영화 내내 지속되던 어두운 밤과 흔들리는 이미지를 뒤로 하고 드리우는 밝은 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뛰어노는 아이들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맨얼굴로 서로를 마주하며 사는 일상의 풍경이 더없는 활력을 선사해준다. 아둔한 식견으로는, 테러가 깃든 그토록 길고 긴 밤은 이 순간으로 도약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김병규 평론가의 글 끝에서도 언급되지만, 개인적으로 <제로스 앤 원스>를 보며 계속해서 떠오른 건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도미노>였다. <제로스 앤 원스> 내내 틈입하던 영상 화면들. 드 팔마가 천착하던 어떤 기계-눈들, 시선과 이미지의 문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점점 더 몸과 몸이 멀어지며 카메라가 눈을 대체하던 펜데믹 시기의 드 팔마 영화가 있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