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내면 관계 심리학.
전희는 전이되고, 유전이라는 운명을 부정하는 몸부림이 매우 심도 있고 처절하다. '미인과 노인과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라는 《태양의 후예》의 대사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마땅히 보호해야 할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죽어서도 남긴 의심의 메시지와 상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바다에서 허덕이며 점점 문제에 잠식되어 정신을 잃어간다.
폭력이라는 트라우마와 좋은 추억 간의 복잡 미묘한 캐릭터의 심리를 이끌어내는 니콜 키드먼.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섹스와 약에 취하고, 아이들의 교육법에 대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그녀의 고군분투가 처연하다.
엄마들의 유난 속에서 시작된 1화는 가십을 거쳐 외줄타기를 하듯 선을 넘으며 거침없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역시나, 이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연기의 내공이 깊은 배우인 만큼, 캐릭터 구축을 메릴 스트립만의 스타일로 일구어낸다. 오총사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언행 하나하나, 그 뒤에 가려진 날선 여성들의 내면전쟁이 더욱 돋보이는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빅 리틀 라이즈 시즌 2》는 시즌 1보다 더욱 세련되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정적과 파도 소리.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탐구. 관계라는 복잡한 얽히고설킴. 뛰어난 앵글의 미학. 배경과 백 그라운드 뮤직의 유려함. 그리고 장면 전환이라는 예술. 그야말로 미드 매력의 집대성이다.
선곡은 Avril Lavigne으로 익숙한 "Bad Reputation"으로 시작해 2화 엔딩 장면에서는 레드불 CF BGM으로도 쓰인 The Roots의 "Redford (For Yia-Yia & Pappou)"이 쓰였다. 음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리즈 통틀어서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이다.
결국, 정적의 장면 전환과 깊은 내면 연기로 만들어낸 폭력에 대한 탐구들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폭력을 휘두를 만큼 완벽하지 않다. 이 드라마에 미친 듯이 빠져들면 삶의 과정 속에 폭력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폭력의 무서운 점은 파급 효과가 무궁 무진하다는 것이다. 폭행이 한 사람의 트라우마가 되고, 원망하게 되며 조 크라비츠의 고백처럼 20년 인생을 망치게 되어 가족과 세상에 원망의 벽을 쌓게 된다. 결국, 전속살해를 미뤄두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지만, 현실에서 납득하기에는 인간의 덧없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은 한계를 가진다. 그 와중에 이 드라마의 강점은 피해자에게 폭력을 버티며 어디까지 왔는지 되새기며 삶을 부여잡으라는 메시지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와 연대하며 함께 싸우라는 해결책도 제시한다. 여성들이 연대하였을 때 비로소 남성의 폭력, 성욕구, 무관심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시즌 1 마지막에서 해결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더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에피소드 내내 풍겼으며, 여성들의 연기와 플롯의 마술사가 만들어내는 연출은 이 시리즈가 단지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그저 그런 드라마가 아님을 또 한 번 증명해낸다.
관계 속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까지 이끌어내는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이 스펙의 연기 내공자들이 만들어내는 대화들이 이 드라마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정말 멋지고, 대단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