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살인광 시대
평균 3.9
2017년 12월 11일에 봄
채플린하면 떠오르는 방랑자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랑자가 아닌 채플린의 코믹 연기는 웬지 익숙하지 않다. 거기에 무성 영화 시절 그가 보인 순수한 몸짓이 주는 절대적 즐거움 역시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의 초기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놀랍다. 포스터에 적힌대로의 채플린의 변신. '오슨 웰즈'의 원안에 자신만의 색을 입혀 만든 <살인광 시대>는 극 중에 코믹하게 섞여 들어가는 채플린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꽤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예컨대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30년이 넘게 열심히 살아온 한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생존하려고 살인 행각마저 서슴치 않게 되었을때 그의 행위가 과연 그 자신만의 잘못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묻는다. - 개인적으로 소수를 죽이면 악당이 되지만, 다수를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영화 속 베르두(찰리 채플린)의 이야기에 동감하진 않는다. 한 사람을 죽여도 살인이라는 죄는 씻을 수 없는 잘못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단순히 그의 살인 행각만을 단죄하기에는 뭔가 마뜩잖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그에게 고작 해고라는 대가를 가져다준 자본주의 체제의 잘못은 없는가. 후반부에 보여지는 신문 기사 속의 사회 상황과 베르두의 입으로 말해지는 사회 비판의 메세지는 거대한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락할 수 밖에 없는 개인에 대한 선악의 질문을 진지하게 던진다. - 거기에 영화 형식으로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의 스릴러를 다루는 시퀀스는 꽤나 놀랍다. 첫 번째 살인을 암시할 때의 여백의 미장센이나 독이 든 병의 의도치 않은 교체로 인한 살인의 실패를 보여주는 시퀀스는 서스펜스라는 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선의와 악의의 극단적인 대조를 느끼게 하는 비 오는 날 만난 여인과의 시퀀스는 놀랍도록 잘 짜여있어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대화로 이루어진 투 샷에서 움직임 하나 없이 대화 내용으로 살인의 의도를 가지고 느끼게 하는 서스펜스는 탁월하기 이를 데 없다. - <살인광 시대>는 거대한 체제 속 개인의 행위에 대한 선악의 판단을 진지하게 묻는 묵직한 사회 비판과 더불어 스릴러 영화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며, '찰리 채플린'이 단순한 무성 영화의 스타가 아닌 영화적 작가로 인정받는지를 잘 보여주는 그의 놀라운 변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