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실

탐욕
평균 4.0
지하실 (jihasil.com) | 극장 상영 | 2025년 10월 3일 자잘한 이익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관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문제작. 단순 치정극의 서사 위에다 냉혹한 자본주의의 로직을 밀도 높게 새긴다. 아홉 시간 분량에서 대폭 편집된 본작은 잃어버린 걸작이자, 형식과 주제 모두에서 영화 역사의 괴물 같은 존재다. 햇살 가득한 골드 러시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모래만 남은 데스밸리 사막까지, 탐욕이 인간을 소진시키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존 개봉판 위에 수백 장의 스틸 사진들을 더해 만든 네 시간 분량의 복원판조차 그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 <탐욕 (1924)>은 걸작이 아니다. ‘거어어얼작’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것이 고전적 스토리텔링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물들 각자에게 욕망을 부여한 후, 복권이라는 작은 장치로 그들의 파국을 조작하는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연출은 가히 악마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소재들 중 하나인 ‘인과응보’의 영화적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다.두번째는 정확히 반대다. 탄생 이후부터 본작이 온몸으로 견뎌온 수난은, 본의 아니게 모던 시네마의 유령처럼 이를 감싼다. 최종 개봉판의 두 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분량이 소멸해버린 ‘로스트 미디어 (Lost Media)’이자, 모든 복원 프로젝트의 성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탐욕>은 그 부재 자체로 영화사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치 크리스 마커의 작업들을 연상시키는 네 시간짜리 복원판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기이한 감각은 사지가 잘려나간 영화의 환상통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그 재건의 공이 관객들에게 넘어온 건 불운인 동시에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