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현승

듄: 파트2
평균 4.1
열 걸음을 나아가기 위해 두 걸음을 물러난다. 그런데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묵직하다. . . 보고 들은 바를 믿으라니, 믿으니 진실인 거다. . . (스포일러)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3년 전 <듄>을 보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SF 역사상 가장 장황한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서막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전한 문명은 인간의 영적 능력을 아우르고, 정치체제는 삼국지를 연상시키는 황제/제후 시대로 회귀한다. 영화는 하코넨 가문의 무자비한 학살 이후 주인공 폴(티모시 샬라메)이 본격적인 복수를 예고하며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듄 : part 2>는 속 시원한 복수극을 담고 있는가? 주인공은 가문의 원수를 처단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이번 속편도 최종편에서의 도약을 위한 준비 단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가문들(Great Houses)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핵심은 복수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난 ‘믿음’의 문제이다. 폴의 정체성(메시아/거짓 예언가) 논란에서 비롯된 인물 간 감정의 응어리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영화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 주인공에게 주목한다. 전작에서 폴은 자미스(뱁스 올루산모쿤)와 결투를 벌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그의 자질을 일찍이 알아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는 폴을 예언 속 구원자로 우상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하지만 그의 우상화 프로젝트는 정치 모략이나 흑막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 민족의 구원자가 되리라고 믿고 있다. 자신이 ‘마디’가 아니라는 폴의 말마저 “마디는 스스로 절대 마디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예언을 거쳐 스틸가의 귀에 닿는다. 폴은 끝내 ‘우슬 무앗딥’이라는 이름을 얻고 프레멘의 새로운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모래 벌레 탑승에 성공하고 꾸준한 전투 성과를 냈지만, 그의 메시아적 입지에 믿음의 문제가 강하게 작용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황가는 아라키스에서 불어오는 ‘무앗딥 신드롬’을 종교적인 현상으로 규정한다. 프레멘 내부에서도 폴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아, 이 같은 분석은 정확하다. 챠니(젠데이아)를 비롯한 북부의 어린 프레멘들은 예언을 남부 ‘신앙’ 따위로 취급한다. 그들에게 메시아는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이념적 도구에 불과하다. 심지어 챠니는 폴에게 “넌 혈통이 아닌 이름만 프레멘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전쟁을 앞둔 민족에게 예언의 사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폴을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아, ‘리산 알 가입’이라고 믿고 있다. 핍박받는 민족은 외부인을 자신들의 세력에 흡수하여 내부 결속력을 다지고 기꺼이 우주 대전쟁에 돌입한다. 때론 믿음이 진실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전쟁을 위해 이념을 활용하는 전략은 하코넨 가문에서도 미약하게나마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군사령관 라반(데이브 바티스타)은 프레멘 저항군을 ‘프레멘 악마’라고 부른다. 사실 ‘악마’는 다른 가문을 멸족시키고 정치•경제적 이익을 취하려 한 자신들에게 훨씬 어울리는 수식어이다. 선악이 뒤집힌 호칭은 병사들의 기운을 북돋아 언제든 모래 폭풍 속 적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덜어낸다(이를 잘 알고 있는 폴은 ‘공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적을 악마화하는 사상 교육은 냉전 시대와 오랜 반공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었던 한국인들에게 이미 익숙한 광경이다. 이런 점에서 라반이 권력을 잃기 직전 벌어진 전투 장면은 흥미롭다. 스파이스 저장소가 폭파되자 하코넨 군은 암석 지대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다가 치명적인 역습을 받는다. 라반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지만, 그의 숨통을 노리는 프레멘 전사 한 명이 그가 탄 비행체에 올라탄다. 라반의 일격을 받은 전사는 ‘무앗딥’을 큰 소리로 외치며 추락한다. 이때 목숨을 바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기세에 겁에 질린 듯한 라반의 표정이 압권이다. 전사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 또 참혹한 식민 지배에서 해방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신 혹은 종교 지도자의 이름을 외치며 목숨을 내거는 모습은 분명 섬뜩함을 자아낸다. 라반이 느낀 공포는 종교와 이념이 지닌 양면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양면성은 영화에서 줄곧 폴의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과 맞물린다. ‘생명의 물’을 마신 폴은 전시 회의에 참여해 남부 근본주의자들을 자신의 추종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목청이 터져라 연설하는 그의 눈에는 어쩐지 매서운 광기가 서려 있다. 친구는 추종자가 되었고, 피의 복수만이 남은 주인공의 외로움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전쟁을 선택하고 민족의 구원자가 될 때 그는 더 이상 챠니의 연인으로 남을 수 없다. 위대한 지도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처의 자리를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비정함은 할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찌르며 내뱉는 말을 통해 완성된다. 영화는 홀로 사막에서 ‘샤이 훌루드’를 부르는 챠니의 표정으로 막을 내린다. 그녀가 사랑하던 연인은 ‘생명의 물’을 마시고 죽었다. 새로 태어난 이는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는 황제뿐이다. 무력으로 황제의 자리를 넘본 이상 그는 영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 복수, 전쟁, 혈통, 믿음, 예언. 모든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탄탄히 맞물린 채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두 편의 시리즈를 통해 말 그대로 압도적인 비주얼도 보장되었다. 이제 시원한 홈런 한 방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