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이 밴드, 이상하다. 무표정한 얼굴. 시커먼 양복.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딱다구리 같은 뾰족한 머리카락과 구두. 심지어 한 명은 연습하다가 시베리아의 추위 속에서 얼어버려 관짝에 실린 채 여행을 같이한다. 관짝에 실려도 뾰족한 머리카락과 구두는 관짝을 뚫고 나와있다. 중고로 구매한 (짐 자무쉬가 판매한) 자동차에 자리가 부족하자 밴드원 두 명을 트렁크에 태우고는 고속도로를 달려 버린다. . 괴기하다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는 이 밴드는 이름부터 눈길을 끈다. 그들은 자신들을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라고 부른다. 너무나 ‘소련적’인 레닌그라드와 너무나도 ‘미국적’인 카우보이를 붙여놓은 이 이름은 이항대립을 직접적으로 예고한다. 소련과 미국.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관객과 밴드. 공권력과 시민.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자본과 예술.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 대립은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영화 속에 녹아들어있다. . 척박한 툰드라에서 소련 군가, “초원(Полюшко-поле)”을 연주하던 ‘카우보이’들은 미국에서는 바이커 갱과 히스패닉 노동자들 앞에서 당시 유행하는 락앤롤이나 컨트리 뮤직 따위를 연주하게 된다. 정작 본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연주를 했을 때의 관객 반응은 처참하다. 환대받지 못하는 이 카우보이들은 기어이 멕시코에서 행복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카우보이들의 궤적을 따라가다가 소련도, 미국도 아닌 중간지대로 대표되는 멕시코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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