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도 나처럼 알지 못하고 세상 앞에 그저 사람 하나로 무력했을 뿐이겠지. 단지 사람의 힘으로 미리 알 수 있었던 일도 어쩔 수 있었던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예전만큼 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호연. 여전히 나는 혼자서 살아갈 것이다. 나에게 가진 원망은 나만을 향하도록. 생을 거듭해 되물어 찾아오더라도 오로지 나 하나만을 찾도록.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 이 소통할 수 없어 무력한 세상에 애정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다 혼자서 떠날 것이다."
"허망하군요."
"그렇지. 하지만 어울리지 않나?"
"그렇습니까? 그 허망한 생에 제가 있어드리겠습니다. 홀로 살아내는 당신의 길을 혼자인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럼 또 어딘가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