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김재민

김재민

6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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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추리

시리즈 ・ 2020

평균 3.6

2020년 1분기 방영작에는 쟁쟁한 애니들이 잔뜩 포진했었는데, 그중 내 기준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허구추리>였다. . <허구추리>는 소설 원작의 애니메이션으로 소설 1권 '강철인간 나나세'편을 다룬다. 감독은 고토 케이지. 장르는 추리, 오컬트, 로맨스가 적절하게 섞여있는데, 사실 일반적인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 <허구추리>의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추리물처럼 하나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상은 이미 주어져있다. 그러나 작품 속 세계관에서는 상상이 실체화되고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 주인공들의 목적은 합리적이며 흥미로운 거짓말을 지어내 "허구를 쟁탈"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매력적인 거짓말을 지어내며 작중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관객인 우리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은가요?"라고. 이렇게 한 단계씩 차근차근 재료를 쌓아올린 후 한번에 터뜨리는 결말에서의 쾌감은 엄청났다. . 후반부 하이라이트의 대부분을 주인공 이와나가 코토코의 독백만으로 이끌고 나가는데 키토 아카리의 훌륭한 연기 덕에 전혀 지루한 감이 없었다.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장면도 많고 내용은 힐링물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냥 키토 아카리의 청량한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 감독이 연배가 있는 편이라 그런지 연출이 고전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낡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좀 과장스럽게 비유하자면 관리 잘 된 골동품 가구를 보는 기분. 멋들어진 음악과 깔끔한 연출의 조화에 마음이 정화된다고 느낄 정도였다. . 전개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덕에 작중의 트릭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중간에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하나 정도 넣고 이야기의 밀도를 높였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 처음에 진상을 추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지어낼 뿐이므로 <허구추리>를 일반적인 추리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추리물' 자체가 지어낸 이야기이지 않은가? 추리물뿐만이 아니다.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쏟아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며 살아가고 있다. . 그런데 우리가 고르는 이야기들은 정말 이야기로만 머무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은 정말 진실인 것일까? 그저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무책임하게 믿어버리는 수많은 얼굴 없는 사람들, 그건 아마 이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미 거짓이 진실이 되고 허구가 실제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합리와 재미로 무장한 채 진실을 대체하고 현실을 침식하는 허구. 당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은 허구입니다. 자,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고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