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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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
star5.0
이 정도면 21세기 호러 장르에서 둘도 없는 걸작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듯 싶다. 태산같은 영화. 아무도 쌓지 않은 태산같은 그런 영화다. 누군가 21세기의 ‘엑소시스트’라고 했다는데, 그건 처음이라 그렇지 이 영화의 성취가 훨씬 값지다고 생각한다. 70년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쉽게 말하는 거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뽕맞은 지금이 그저 행복하다. 온갖 기이한 마력의 지옥같은 뻘밭에서도 또 이야기의 욕심도 놓지 않아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뻔뻔하게 밀어부치는 모양새가 보기에 아주 즐겁다. 그러니까 적어도 나에겐, 이런 호러 장르에서 쌓아온 그동안의 도식들을 모두 무너버리는 듯한 그런 영화였다. 흔히들 호러 장르 틀만 빌려와서 비튼답시고 아기자기하게 변주하는 영화들 많이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런 걸 신선하다 말하지만, 이를 테면 제목부터가 오두막 호러 <캐빈 인 더 우즈>처럼. '유전'은 뭐랄지, (표현이 저렴하지만 그래도) 호러 장르의 기존 공식 태워서 재로 만들고 다시 쓰는 듯한 그런 영화 같다. 내게는. 모든 게 새롭진 않아도, 기존 어떤 호러와도 같이 묶일 수 없는 그런 고유함이 여기에 있다. 사실 난 사전 정보 없이 봐서 처음엔 유럽 쪽 아트하우스 영화인가 했고, 배우도 가브리엘 번 빼고 몰라서.. 근데 영어가 너무 미국식 영어라 그것도 아니고. 그랬다고 그러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오컬트 영화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게, 이야기 발파점도 늦고, 보여주고 감추는 플롯의 작동 원리가 말하자면 그 논리 스트럭처가 완전히 반대로 설계됐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렇다. 적어도 내겐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이건 연출의 방향도 그렇지만 그런 걸 이제 용인해줄 수 있는 카메라의 윤리 문제가 조금은 유연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8년 <도쿄>에서 광인의 성기가 나왔다고 뉴스 기사를 장식하던 지 십년이 지났으니. 내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란 게 사실 그 지점이다. 그동안 숱하게 보아왔던 것들이 사실 여기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고어나 신체 훼손(이건 조금은 나오지만) 난 장르도 몰라서 사실 기대도 안 했지만, 오컬트라니 퇴마 의식이라던지 이런 게 없다. 여기서 감독이 단지 도전적인 시도를 한다는 제스처만 취했다면 얄팍한 시도에 그쳤겠지만, 난 초반에 감정적으로나, 이미지적으로나 무척 격정적이었던 어떤 일이 지나가고, 그걸 비추는 과정에서 뭐랄까... 창작자의 진심 같은 게 느껴졌다. 그 장면은 정말이지... 혐오스러운 이미지 그 자체지만 이상하게 처연한 아름다움같은 것도 느껴졌다. 얼핏 중요해 보이고 실제로도 그런 서사 이벤트들을 괄호치고, 그러면 남는 시간에 무얼 조명하냐면 아마 그건 심리일 지도 모르겠다.(드라마 보다가 갑자기 적고 싶어져서, 적으면서 생각한다. ㅋㅋㅋㅋ솔직히 이런 건 오래 고민한다고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다) 이걸 단순히 모성이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이리저리 재단하는 건 감독이 바라던 이야기의 지향점이 아니리라 믿는다. 아마 극의 대단원이 오르는 무렵 말하는, 신화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가 아마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겠지. 그야말로 용기 있는 결정이었던 거 같다. <유전>은 그러니까 재능 있는 사람이 야심까지 품게 되면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아마 그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지점에는 어떤 막힘도 없을 것이라는 어떤 긍정적인 확신같은 걸 우리에게 내려주는 그런 영화다. 두 시간 동안 참 행복했다. (이전 글이 너무 천박해서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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