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영화많이보는사람

야노
평균 2.6
2025년 11월 10일에 봄
와 이 영화 단단히 미쳤다... 2025 SIPFF에서 가장 재밌었던 영화. 번역 제목인 <야노>는 '야외 노출'의 줄임말인데 사실 작중 인물들이 하는 행위는 '야노'라기 보단 'public sex'(공공장소에서의 성행위, 'sex in public'이란 표현도 사용하나 이하 '퍼블릭'으로 칭하겠다.)이다. 뭐 '공연음란죄' 같은 불법행위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리고 게이컬쳐에서 딱히 고려할 부분은 아니니 넘어가자. 나름의 맥락을 설명해보자면 공공장소에서 하는 헤테로 커플도 있으며, 영화 내에서 퍼블릭 행위가 게이들의 '크루징'과 섞이고 확장된 개념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크루징이야 게이임을 드러내면 죽을 수도 있던 시절부터 억눌린 욕망의 해결책으로 나온 문화이고, 그런 크루징 스팟은 화장실일 수도 공원일 수도 다른 공공장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지점들에 대해 어느정도의 이해와 열린 마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영화가 마냥 좋게 보이진 않을 수 있다. '퍼블릭' 행위를 즐기는 이유는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르는 스릴' 때문이다. 많은 리스크가 걸릴 수록(들켰을 때 잃을게 많을수록) 야노든 퍼블릭이든 보상으로 오는 쾌감이 더욱 커지는 듯하다. 그래서 때론 인생을 걸고 야노/퍼블릭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영화를 스릴러로 볼 수 있게끔 해주는 퍼블릭 씬들이 가져다주는 스릴이 대단한데 가끔은 너무 심하다 싶어 내 가슴이 다 졸여지는 그 섹슈얼한 텐션들을 느낄 수 있다면 아주 좋다. 이 영화에서 퍼블릭(야노)이 단순한 일탈행위로의 장치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하는 게이들의 자신을 드러내고자 욕망의 배출/탈출구에 대한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아를 표출하고 싶은 그 욕망을, 걸리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그 욕구와 스릴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어쩌면 들키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르는 퍼블릭 행위와 연결지었다. (그래서 제목을 <야노>로 번역한 것도 이해는 간다. 국내에서는 '퍼블릭 섹스'에 깔끔하게 대응하는 단어가 없고 대신 '야노'가 그 감정과 쾌감 회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퀴어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변에 커밍아웃하고 퍼레이드에 참여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본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련의 과정이기에, 어떤 퀴어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 자체가 죽음(자기부정)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존중은 하는데 그냥 좀 조용히 살면 안돼?”라는 태도는 퀴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생각이 없는 굉장히 모순적인 말이다.' 예전에 루카 구아다니노의 <퀴어> 리뷰에 썼던 문단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면 죽을만큼 힘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에게 주는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진 배우 '마티아르'와 정치인 '라파엘'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도 숨겨야한다. 마티아르는 여성팬덤을 구축하기 위해 일틱하게 꾸미고 행동하며, 라파엘은 시장 당선을 위해 보수적인 유권자들 눈 밖에 나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점은 배우도 연기를 하는 직업이고, 정치인도 어찌 보면 연기를 엄청 잘해야하는 직업인 부분인데 수많은 클로젯 게이들이 평생 가족마저 속여가며 '연기'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고, 일상에서의 삶 뿐만 아니라 뒷편의 게이로서의 삶마저 숨겨야하는 주인공 커플의 중압감은 어마어마할 터이다. 하지만 이 정체성의 표출, 사랑과 욕망은 막을 수 없기에 그들은 몰래 만나며 이 과정에서 점점 더 깊이 퍼블릭 행위에 몰두하게 되는데 점점 커지는 이들의 대범함은 어찌 보면 차라리 들켰으면 하는 마음이 커진 것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둘 모두 점점 잃을 것이 많아지기에 그에 따른 쾌감도 점점 커졌을 것이다. (처음에 라파엘이 마티아르에게 경고하러 나타났을 때 귓속말로 '얻는 것이 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의 맥락을 가진 이야기를 한다.) 처음엔 실내에서 바깥 조명이 켜지는 것에도 움찔했던 그들이었지만 결국 커튼을 활짝 치고 섹스를 하고, 다음은 누군가가 커튼만 걷으면 들킬 지도 모르는 마당에서 한다. 그리고는 인적 드문 언덕에서 남들이 썬팅된 차 안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카섹스를 하며(이때부터 라파엘도 본격적으로 즐긴다.), 이제 선거사무소에서도 거침없이 키스를 하다가 보좌관에게 들키고, 회의 중에도 영상통화를 하며 발기된 성기를 만지작거린다. (근데 이건 좀 과하긴 했음ㅋㅋㅋ) 결국 주차장에서 한 가족이 지나가던 옆에서 몰래 섹스를 하던 것이 마티아르의 라이벌 친구에게 찍히는 등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지만 이 와중에도 오히려 점점 더 과감해지는 그들의 욕망과 그 스릴이 주는 흡입력이 엄청나다. 그래서인지 엔딩부가 사실은 예상이 갔다. 뒤는 파멸뿐이 남아있지 않겠지만, 굳이 그걸 고려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욕망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야노든 퍼블릭이든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영화가 상업성을 챙기고 싶었는지 갑자기 후반부에 분위기가 급변하는 설정이 생긴다. 약간 실소가 나오긴 했지만 엔딩부의 그들의 무아지경에 보탬이 되었던 부분은 있다. 클럽에 갑자기 등장한 가죽남의 경우가 또 꽤나 흥분 포인트이다. 라파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이 가죽남이 의미하는 바는 좀 더 천천히 생각해보겠다. 후반부에서도 가죽남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한번 더 등장하니까. 이 영화를 단순히 변태행위적인 영화로만 본다면... 조금은 안타깝다. 특정 커뮤니티의 문화를 알고 영화를 본다면 더 다양한 시각으로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