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진

어두워질 때까지
평균 3.5
제발 인형을 받아주세요. - 리사라는 이름의 한 여성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한 남성에게 자신의 인형을 맡긴다. 마이크와 칼리노는 리사의 집을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리사가 아닌 해리를 만나고, 마이크는 리사의 시체를 발견한다. 해리는 그들에게 이 집에서 리사가 숨긴 인형 속 마약을 찾자고 제안하고, 그 순간 집주인인 시각 장애인 수지가 집에 도착한다. 오드리 헵번이 시각 장애인을 연기하며 변신을 꾀한 작품이기도 하며,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매우 뛰어난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된다. 시각 장애인인 주인공을 상대로 강도들이 어떻게 주인공을 속일 것인가가 관건인 이야기를 다루는 점이 꽤 독특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은밀한 연출로 서스펜스를 짜내는 힘이 탁월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특히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일반적인 서스펜스의 방식에서 다루는 선악 구도가 전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악역을 피해 선역이 숨는 것이 아니라, 선역을 피해 악역이 숨는 것에서 서스펜스가 생긴다는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타파해야 한다는 외침을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장애인이 가진 장애가 그 사람이 핸디캡만 가진 것을 의미하진 않는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적지 않은 수의 장애인들은 장애를 겪는 만큼 자신의 다른 부분을 오히려 발달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수지 또한 바로 그러한 인물일 것이며, 그 점이 영화의 흐름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요소라고 생각된다. 오드리 헵번의 시각 장애인 연기는 눈과 손의 움직임에 디테일이 살아있어 일품이라고 생각되며, 지금은 존경받는 원로 배우가 된 알란 아킨의 변화무쌍한 연기 또한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시각 장애라는 소재가 절묘하게 섞여있으며 인물들 서로의 입장을 두고 줄타기를 벌이는 듯한 클라이맥스의 에너지가 끝내주는 작품이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불빛이나 소리를 차단시키는 등 자체적으로 부여한 한계 속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된 이 영화로 오드리 헵번 영화의 정주행을 마칠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