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정환

정환

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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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디셈버

영화 ・ 2023

평균 3.5

자신들의 사랑이 진짜였다는 최면을 걸어야지만 겨우 견딜 수 있는 사랑을 하던 애벌레에게 사랑의 근간을 묻기 시작하자, 자신이 여전히 나비가 되지 못했다는 것 또한 깨닫고야 만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하는 일들을 호기롭게 알려주던 이들조차 여전히 나비가 되고 싶은 (혹은 되지 못한) 애벌레처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 .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엘리자베스의 이야기, 그레이스의 이야기, 그리고 어느덧 조의 이야기. (나탈리 포트만과 줄리앤 무어의 연기를 감상하려다 찰스 맬튼의 연기에 더 놀랐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나왔던 플라워 킬링 문에서의 로버트 드 니로나, 오펜하이머에서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보다도 더 좋았다.) 누구를 의심하고 누구에게 정을 줘야 할지, 누구를 안타까워 해야 하는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뒤틀린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상한 유머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희롱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영화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앵글 안에서 불편한 사랑을 소재로 한 이야기의 진실과 당사자의 진심들을 헤아리며 나아가는 듯하지만, 매혹적인 미장센을 부수고 등장하는 괴이한 음악이 이곳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경고한다. 호의가 가득한 어투에 어딘가 균열된 대화들을 느낄 때마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불안정한 분위기를 받아들인다. 제아무리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돌을 던져도,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버텨왔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본 그들의 모습은 매우 불안정하다. 돌을 던져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단단한 게 아니라, 이미 무너져 더 이상 붕괴될 것이 없어 보일 만큼 위태로운 개인이다. 그럼에도 위태로운 이 둘 사이의 사랑만큼은 굳건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외부인의 등장으로 둘은 지금껏 줄곧 사랑이라 믿어온 것을 다시 돌아본다. 가린다고 가려지지도 않은 것들이라 진작에 모두가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조차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사랑이다. 타인의 사랑을 유희하는 외부인들의 스토리텔링들이거나, 차마 그땐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거울처럼 마주했기 때문이었건, 애써 감춰왔던 사랑의 최면을 끝내어 그제야 우리 사랑의 근간을 묻게 된다면, 그것부터가 이 사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럼 사랑의 위태로움을 초래한 것이 그들을 흔들어 놓은 외부인들의 잘못인가. 그것은 비단 그들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흔들리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 자체만으로 사랑의 기반이 부실하다는 증거가 되지 않나. 그럼 이 부실한 사랑을 시작하게 된 당사자들의 잘못인가.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이야기들을 마저 건드린다. 이것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사랑이 진짜였다는 최면을 걸어야지만 겨우 견딜 수 있는 사랑을 하던 애벌레에게 사랑의 근간을 묻기 시작하자, 자신이 여전히 나비가 되지 못했다는 것 또한 깨닫고야 만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하는 일들을 호기롭게 알려주던 이들조차 여전히 나비가 되고 싶은(되지 못한) 애벌레처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오고 가지만, 정작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태반이다. 누군가는 어떠한 목적, 꿈을 이루기 위해 날갯짓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고, 누군가는 자신이 아직도 애벌레인지 깨닫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른 누군가를 비판하는 말을 할 때, 마치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 것들을 보고 있다면 말이다. 알면서도 보지 않는 것일까, 정말로 모르고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 여러 거울샷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누군가를 연기한다는 것은 어딘가 모순되어 보인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옳은 사람인가, 이 사랑이 과연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도 나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들로 내린 정의를 믿는 것도 참 웃기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조금의 외부의 침입에도 흔들릴 만큼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못한 내부 때문이려나. 과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알기는 할까. 진심, 사랑, 호의, 경멸, 연기와 진실이 수없이 얽혀있는 이 공간에서 날갯짓 한번 해보겠다는 내가 얼마나 우스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