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훈남

듄: 파트2
평균 4.1
2024년 02월 28일에 봄
이토록 정교하면서 우아한 아름다움은 처음 마주한다. 현대 영화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리고 그 관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극한의 광활함. 폴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 남지 못 했다. 챠니를 잃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폴은, 아이러니하게 그것을 극복했다. 용기를 발휘했다. 그는 이제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힘도, 훌륭한 사냥꾼처럼 높은 곳에서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도,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곳인 남부 사람들의 믿음도 얻었지만, 그는 챠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자신의 모습을 잃었다. 그리고, 이내 망각할 것이다. 모든 걸 잊어버렸다가, 결국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된 폴 과거의 모습처럼.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 챠니는 폴에 대한 호감으로 부끄러워서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모래벌레를 타는 데 성공한 폴을 보며 이전까지는 느껴본 적 없는 사랑을 마음 속으로 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살면서 처음 겪는 뜨거운 마음이 '식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녀는 두려워했다. 폴에게까지 직접적으로 자신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까지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진 않았다. 끊임없이 폴의 사랑을 두려워하며, 그 사랑이 끊기는 시점을 예측하고, 그것에 초연해 했다. 그러니까, 폴의 눈동자 속에서 챠니는 한순간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지 않고 최전선에서 동료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었고, 이별이 주는 두려움에 매달리지 않았으며, 어쩌면 폴보다도 더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 드니 빌뇌브도 알았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엔딩을 그녀로 장식하는 걸 보면. “널 잃을까 봐 두려워.” “그럴 일 없어. 네가 너 자신으로 남는 한.” “너와 함께 폭풍을 건너 남부로 갈게.” 폴은 어떻게 칼자루를 쥘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욕망', '모멸감'을 짓누를 수 있는, 하나의 확실한 '믿음'이었다.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 안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챠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무너져버린 가문을 향한 '복수심', 그로 인한 '분노', 하물며 어떻게 적을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본능적인 '탐구'... 당연히 그것에 지배당했다면 폴은 강해지지 못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적절히 분배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도움닫이'로 이용할 줄 알았으며 자신이 느낀 '공포'를 당연히 상대도 느끼고 있다는 '인지'와, 자신이 의존할 수 있고, 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랑'을 확보하고, 자신의 편을 무한히 만들어놓는. 한 명의 강인하고 용맹한 전사에게서 나는 '알파메일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았다. 근래 관람한 영화 중 가장 캐릭터의 성장점과 구체화가 돋보인 작품.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지?” “내가 살아 숨쉬는 한.” 이룰란 공주는 '절망적'인 일을 하고 있는 황제의 딸이지만, 그 집단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찾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황제 집안의 딸로 태어난 것 자체가 절망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 죄책감과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먼지처럼 쌓여있는 불쾌한 감정들을 씻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폴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은 채 모든 사람에게 '신뢰'와 '복종'을 얻고 있는 그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자신의 아버지를 해칠 '위협'이 아니라, 모든 것을 끝내줄지도 모르는 '구원'처럼 여겼을지도 모른다. “거기 무슨 희망이 있죠?” “우린 희망이 아닌 계획을 하는 사람입니다.” 인물들간의 대립구도 역시 인상적이다. 특히 라반은 가차없이 자신의 부하를 죽이는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보통 이런 서사에선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주인공과의 긴장감 넘치는 대립으로 극을 풀어나가곤 하는데, 이 영화는 정반대다. 라반은 분명 기호지세의 태도로 폴을 상대하러 나섰지만, 들리는 소문과 눈앞을 가리는 그림자에 속아 순식간에 겁을 먹고 달아난다.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아마 역사 속 수많은 장군들을 보고 적이 두려움에 떨듯, 모든 것이 다 역사적으로는 흔했지만 영화적으로는 특별했다. 인물들간의 모든 대립이 마찬가지로 구성이 되어있다. 특별한 서스펜스 없이도 재미를 생성할 수 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던 드니 빌뇌브. "저들이 겁먹은 게 보이십니까?" "가진 게 없으니 그렇지. 쓸 무기가 공포심밖에 없었어." 영화를 보며, 쉴 틈 없이 강력하게 빠져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이런 대작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하는. 은근히 무기력한 생각. 정말 괜찮은 영화다. “오늘 아침엔 너가 질서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영웅이지.” 이 영화는 폴을 비추고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그 파괴를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질 것인가. [이 영화의 명장면] 1. 구원받은 생명 챠니의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준 장면. 의심은 지나치게 확신을 방해하다가도, 그 경계가 느슨해지면 더욱 강력한 확신이 되어 나타난다. 챠니의 마음이 그랬다. 폴은 이방인이었고, 분명 훌륭한 전사였지만 믿음직스럽진 못 했다. 그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 고민하지 않고 희생한 폴의 눈동자에 챠니는 금세 빠져들었다. 그러고는 헷갈린다.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럴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이내 입을 맞춘다. 흩날리는 모래바람 속에서. “여긴 모두가 동등해. 모두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나도 너랑 동등해지고 싶어.” 2. 모래벌레 모두가 숨죽여 바라보게 되는 장면. 예언을 믿는 남부 사람들과 스크린 밖 관객들까지도.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걸 겁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앉지 않고 해내는 폴과, 그 모습을 지켜보며 특히나도 기뻐했던 챠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떠한 집단 속에서 굉장한 업적'을 이뤄낸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녀의 표정에서 모든 게 드러났다. '역시 사랑하길 잘 했어' 같은 우스운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모든 건 인간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본능적인 감정에 불과하니까. “남들 눈은 신경쓰지 마. 네가 용감한 건 모두가 알아. 간결하게, 멋부리지 말고.” “멋부리지 않아요.” 3. 페이드 로타 황제가 무릎 꿇기 전, 용감한 대리인이 칼을 건네받은 채로 나선다. 황제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아첨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하코넨 남작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그를 보며 진작에 깨부쉈다. 오직 '그토록 대단하다던 폴의 전투력'이 순수하게 궁금했을 뿐이다. 그는 어느 정도 매너가 있는 빌런이었다. 적의 공을 존중해줄 줄도 알고, 똑같은 환경에서 싸우는 걸 선호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패인은 다름 아닌 '마음가짐'에 있었다고 본다. 자신이 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과 새로운 대립에 눈뜬 '두려움'을 품고 있었던 폴과는 달리, 로타는 '자신이 끝내 이기고 말 것'이라는 일종의 '방심'이 있었다. 경적필패인 법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잊지 마. 내가 살아숨쉬는 한 널 사랑할 거라는 걸.” 챠니는 과연, 마지막까지 그토록 사랑했던 폴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 부를 수 있었던 그 이름인 챠니라고 불리기를 바랐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과거의 폴로 돌아오기를 바랐을까 그녀는 변해버린 폴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자신과 동등해지고 싶다던 폴의 바람을 들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