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예진

예진

9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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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책 ・ 2003

평균 4.1

나는 대부분의 한국 소설들의 질질 끄는 긴 문체가 싫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굳이 선호하지 않는다. 윤동주의 시들과 같이 별다른 미사여구나 형용사 없이 간결한 표현(때로는 단어)만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위대하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번역 소설에 한국 소설보다 더 큰 감동을 받고는 하는데(적어도 내 생각에는, 번역 소설은 "번역"되기에 원문보다 조금 간결해지고 명확해지는 '느낌'이 있다), <자기 앞의 생>은 그런 번역 소설인 데다가, 원래의 표현 역시도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사실만을 전달하는 절제된 면이 있어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나 해가 뜨는 것 같았다." 라고 말하는 것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무엇을 했는지만을 말하는 것 "자연의 법칙 따위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혹은 이런 말들.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에밀 아자르는 그런 사실의 전달을 , 그 배열과 그 표현을 아주 잘 절제하여 하는 작가이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속에서부터 눈물이 북받쳐서 숨이 막혔다. 나는 로자 아줌마의 품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두 팔로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울며 소리쳤다." 여기에는 '슬픔'과 관련된 어떤 형용사도, 애매모호한 표현도 없다. 그렇지만 화자의 감정은 아주 잘 전달되고, 오히려 더욱 아프게 다가오기까지 한다.